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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 2012 2월호

 

연애 잘 하는 여자들

 

연애하는 여자들은 그 어느 때나 연애를 하고 있었고 연애 안 하는 여자들은 그 어느 때나 연애를 안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격차는 어디에나 존재했다. 시중에는 늘 연애 중인 여자들은 뭐가 다르고 특별할까를 여러 측면으로 분석해서 그들의 유혹적인 언사와 전술을 소개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런 벤치마킹 노력들은 모두 하등의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의 그 지침서들을 내가 직접 써놓고도 말이다. 십 년 가까이 연애와 사랑에 대한 글을 써오면서 도달한 지점은, 결국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그녀들은 원래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원래 그런여자들을 따라 한다는 것은 이미 시작부터가 지는 게임인 것이다. 그녀들은 그저 남자들을 속수무책으로 좋아할 뿐이고 감정을 쏟아내는 내면적인 능력은 애초에 배워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연애하는 여자들이 반드시 더 객관적으로 매력적이거나 우월하고, 더구나 세련되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결핍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고 단순하고 유치했다. 좋아하면 앞뒤 안 보고 몸과 마음을 주던, 참 상대 입장에선 편리하고 쉬운 여자가 나중에 가서는 버겁고 무서운 여자가 될 뿐이었다. 요령이 없었고 본전 생각도 안 했고 센 척도 못했다. 지금 이건 순수하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다. 날 것 그대로의 마음을 상대에게 부딪히지 않으면 먼저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 이기적으로 군 것이다. 표정과 말투에 뻔히 드러나니 밀고 당기기 같은 건 할 수도 없었다. 적어도 내 자신을 돌이켜봤을 때도, 단 한 번도 연애에 관한 한, ‘학습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 나는 인터뷰에서 연애 많이 해보셨죠?”라는 사적인 질문을 인정사정 없이 받는 여자다. ‘많이의 개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진 사람보다 많이 해본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런 나의 숱한 연애질에 동반했던 치명적인 결함들을 고백해볼까 한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인정사정 없이 푹 빠졌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자나깨나 그 사람 생각으로 온 몸이 절임상태가 되고 오른 쪽 눈썹 위 이마쯤에 그 사람의 얼굴이 하루 종일 대롱대롱 매달려 다녔다. 그렇게 노상 붙이고 다니면서도 그 사람을 끊임없이 그리워하느라 속살이 매 순간 아리거나 심장이 당장에라도 터질 지경이었다.

 

바보가 아니니깐 머리로는 먼저 연락하거나 사랑한다 말하면 안 되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었다.

나이 먹어갈수록 감정이 잘 통제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 나이가 되서도 매번 조바심과 애간장을

태웠다. 나는 감정을 표현하고 내지르고 싶어 안달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참 사람은 지긋

지긋하게 안 변하는구나싶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그 후에 남는 것은 서로의 실체에 대

한 실망과 몰이해, 그리고 마침내 이별이라 할지언정, 최소 매일, 하루 반 나절은 그 사람과 몸과

마음을 꼭 끼운 체로 보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이런 정신상태가 파멸을 보다 확실하게 가

져다 줄 걸 알면서도 나도 나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느덧 이런 말을 듣곤 했다. “너랑 연애하고 있으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 나는 블랙홀 같은 존재가 되어갔고 그 말에 핏기가 가시자 그들은 시선을 피한 체 이렇게 덧붙였다. “네 잘못이 아냐. 너를 감당 못하는 내가 못난 놈이라서 그래.” 그렇게 자상한 말을 안 해주더라도 그게 나의 병적인 유전자 문제라는 것쯤은 받아들일 요량이었다. 가끔 그 사람과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나무라기도 했다. “너는 너무 혼자 뜨거워지는 경향이 있어.”

넌 그냥 사랑을 사랑한 걸 거야.” 하지만 그것은 대상이 그 사람이었으니까 가능했다. 아무

리 쉽게 사랑에 빠진들 취향이 있는 데 그런 식으로 치부하니 마음이 아팠다. 굳이 순

순히 죄를 인정한다면 내 쪽이 상대를 처음부터, 혹은 도중부터라도 더 사랑했다는 점이다.  적당

히 나 좋다는 괜찮은 남자와사귀어 주는 것보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겨 최선을 다해

그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더 깊은 충만감을 주었다. 물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애태우고 마음 닳고 차일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속수무책으로 항복하는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것, 상대 앞에서 자신 있게 무력해지는 것마저도 행복했다. 어차피 상대를 진심으로 좋

아하게 되면 그 어떤 연애라도 100% 상처받게 되어 있는 거다.  


그 아릿한 봄날들을 숱하게 거쳐온 후에도 여전히 난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여전히 사랑은, 연애는, 만나고 싶을 때 만나야 하는 것이었다. 서로서로 간절히 보고 또 보려고 하는 노력이 편리하게 다른 걸로 대체되는 걸 허락하는 순간 연애는 이미 끝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엔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약속처럼 모든 사랑에는 반드시 이별이 찾아왔다. 이별은 대개가 순탄치가 못했다.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몸이 납득을 못했다. 헤어지자고 했으면서도 번을 만났다.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이젠 진짜 관두자고 해놓고서 만나고 만나고, 그가 도망치듯 타버린 택시 뒷자리에 따라 타버리고, 애인 해도 좋으니 친구로라도 남아달라고 빌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마지막으로 나랑 번만 자달라고 애원하고. 연애를 하는 여자들은 실은 그만큼 자주 차이는 여자들이었다. 남자에게 이별을 먼저 고하는 대단한 여자들? , 그녀들이야말로 자기 좋다는 남자들을 사귀어 주기만 저렴하고 불쌍한 여자들일 것이다.

 

급기야는 사람의 진짜 마지막 날이 왔다. 대개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비난과 저주를 동반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사람을 사랑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정말 있을까?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없다고 대답할 같다. 세상의 어떤 이별도 아프고 먹먹하기만 했다. 아무리 미화한들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사람을 놔줄 수가 없었다는 뜻일 게다. 극한까지 상대와 나를 괴롭히지 않으면 차마 헤어지지 못할 정도로 사람을 사랑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까. 옛날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질까, 아니면 소설 쓰고

앉았네.’라며 썩소를 지을까. 실제로 나는 감정덩어리를 여태 처리를 못해 연애소설을 썼다.

그리고 소설이 나온 , ‘어떤 독자들에게 읽히길 원하냐 인터뷰 질문에 연애를 만큼

여자들이 읽어야 재미있을 것이다. 연애 해본 여자들은 읽어도 이해 못하고 재미도

것이다.”라는 대답을 했다가 가뜩이나 연애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여기서도 차별하냐 뭇매

맞은 적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보다 솔직하고 진지했다. 연애하고 하고는 자격증

이나 인간의 됨됨이 레벨테스트가 아니잖아? 연애 못하고 있는 인간적인 하자처럼 치부될

일도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연애하는 여자와 하는 여자의 사이에는 단순히 좋게 주변에

쓸만한 남자가 있냐 없냐라는 환경적 요인의 문제가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근본적인 태도

(attitude) 차이가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를 가지는

사이에는 상상 이상으로 강이 흐르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연애할 있을 연애하라> 취지의 글을 연애를 하거나 못하고 있는 여자들을 대상으로 써왔지만 돌이켜 보면 연애할 있을 연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논리적으로도 부족하고 설명도 충분치 못했던 같다. 하지만 이제는 같다. 내가 모자란 것도 있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논제 자체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연애라는 행위는 강추 범주에 들어갈 만한 성질이 애초에 된다는 !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연애하는 법을 가르칠 없듯이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연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조차 불가능함을 나는 조금씩 겸허히 받아들여가고 있다. 굳이 위안이라면, 연애가 정말 그렇게 좋은 것일까 라는 의심도 같이 든다는 사실이다. 연애는 사실 위태위태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연애 못한다며 불안해하지만 누군가를 사랑 하는 상태가 자유롭고 평화롭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나는 통감하고 있다. 연애하는 여자들은 어쩜 이리도 적응과 변화에 더딜까. 드라이하게 살아볼까 다짐해보아도 다시, 말하지만 원래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이것은 놓여진 정황에 따라 때로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된다. 저주임을 알면서도 강을 한번 건너는 것이다.

 

그 모든 환희와 파멸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연애를 안 하는 여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그럼 왜 연애해?” 혹자는 운명론을 논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연애하는 여자들은 운명적인 사랑은 믿을 만큼 또 순진하지 않았다. 그녀들이 대신 직접 목격하고 만져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운명적인 사랑의 순간들이었다. 그 찰나의 황홀경을 느끼게 해준 몇 번의 운명적인 순간들이 그 다음 사랑을 낙관적으로 꿈꾸게 할 만큼 깊고 강렬했던 것이다. 사랑이 어떤 형태로든 가시적인 결실을 맺는 것이 반드시 중요한 게 아님을 그녀들은 어느 순간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걸 수도 있다. 다만 운명을 느끼게 만드는 그 충만한 순간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 깊은 흔적을 만들어 놓고 갔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라는 자연스런 납득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과거에 상처 주었던 남자들에게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 배신감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적도 없다. 배신이라니, 그럼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어떻게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지? 대신 그 이름들 모두를 결코 기억해줄 수는 없다. 앞으로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위해 공간은 좀 비워놔야 하니까. 늘 연애하는 여자들에게 구비된 최고의 차별적 특징은 어쩌면 이런 자가당착적인 착각능력일지도 모르겠다.

 

/임경선(칼럼니스트, <어떤 그녀들이>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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