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FILE
  • COLUMNS
  • FREETALK
  • BOOKS
  • SCHOOL
  • 회원가입
  • 아이디&패스워드 찾기
COLUMNS
글 수 1,450
채널예스 12월2째주 <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마감을 했다!

예전에 한 칼럼에서, 책을 쓰는 일련의 과정 중 내가 가장 즐거울 때는 첫째, 얼개를 잡고 초고를 내키는 대로 써나갈 때, 둘째는 교정지 상태로 처음 원고를 볼 때, 마지막으로는 책 제목을 고민할 때다, 라고 쓴 적이 있었는데 나는 지금 후자 두 개의 즐거움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얼마 전, 초고를 쓴지 9개월만에 새 소설을 탈고, 즉 끝냈기 때문이다. 그 형언하기 힘든 속시원하면서도 허탈한 느낌 하나는 애를 낳았을 때의 그 느낌과 흡사하다. 그러고보니 9개월은 한 아이를 임신해서 낳기까지의 기간이다.

마감날짜에 맞춰 드디어 수 차례 보고 또 보며 수정을 거듭해온 소설원고를 이메일로 보내니 담당편집자는 ‘정말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이젠 한시름 놓으세요’라고 답신을 보내왔다. ‘아이 낳는라 정말 수고했다, 이젠 몸조리에만 신경써라’는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골지점에 도착해서도 아직 흥분이 체 가시지 않았다. 사실 소설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교정지로 받아서 마무리점검을 하기까지의 한달 남짓한 공백의 시간은, 마치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이직하면서 가지는 그 사이의 휴가처럼 인생에 있어서 주어지는 가장 달콤한 휴식기간 중 하나다. 어떻게든 글은 씌여졌고, 중간에 여러 불안한 과정도 거쳤지만 이젠 무사히 하나의 완성품으로 만들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해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아직은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져 독자들의 손으로 넘어간 상태가 아니니 지금까지는 나(와 편집자)만이 보듬을 수 있는 애틋한 소유물이기도 하다. 어쨌든 기나긴 원고집필기간 중에서 반짝 주어지는 선물 같은 시간들이다.

사진 : 9개월간 함께 고생해준 나의 친애하는 노트북, 맥북에어

힘들게 막바지 마감을 하는 동안에는 ‘마감하고나면’ 하고 싶은 것들, 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보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어서 보지 못했던 영화나 전시를 보러가거나, 쌓아놓고 읽지 못한 책을 읽거나, 못만났던 친구들을 만나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격렬하게 쉬고 싶다고 갈망한다. 그러나 막상 마감하면? 그 욕구들이 묘하게 시들해진다. 김연수의 산문<소설가의 일>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소설가는 소설쓰는 일 외에 애시당초 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시간관리를 한다’라고. 같은 선상에서 막상 소설 쓰는 일을 끝내서도 할 일을 만들지를 못하고 있다. 글을 쓰는 외의 모든 시간들은 ‘그 외’ ‘나머지’ ‘기타’적인 시간들처럼 시시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마라톤을 완주한 다음에도 호흡을 고르기 위해 걷듯이, 아직도 매일아침이면 카페에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나가, 다음에 쓸 산문이라도 매만지고 있다. 그러다 심심하면 책 제목이나 홍보카피를 끄적이기도 하고, 커버디자인에 쓸 이미지 등을 뒤져보고 있다. 일종의 산후조증이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글 쓸 때는 외로워하면서도 어느덧 그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어 심지어 고독을 즐기고 있다. 그러면서 한창 소설원고를 수정했던 시기를 몸으로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중에서 고생했던 부분 – 초고수정을 하면서 경악했던 때라거나, 연거푸 수정을 거듭하면서 토나올 지경이 된다거나, 편집자들의 뼈아픈 중간리뷰를 받을 때라거나 – 은 또 하나도 감각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체 언제 원고지 600매를 채워썼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마치 아이를 낳으면 임신중에 고생하면서 ‘내가 다시는 애를 가지나 봐라’며 이를 갈았던 시절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 또 새로 임신하는 것처럼 우리도 또 새로 무언가를 쓰는 것이겠지.

한 권의 책이 끝나자마자 다른 책 작업을 시작하는 나를 보고 친구인 가수 요조는 ‘예술가는 느긋하게 좀 놀 줄 알아야 한다’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지만 어떨 땐 쉬고 노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게 다가온다.


글/임경선


1. 김연수 <소설가의 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네이버 오디오클립 [임경선의 개인주의 인생상담]이 매주 방송됩니다. 캣우먼 2017-06-09 852
공지 에세이 <자유로울 것>이 출간되었습니다 : ) 캣우먼 2017-01-23 3022
공지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리스트 (비정기적 게으른 업데이트) 캣우먼 2014-01-19 58767
1430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극한직업을 보면서 캣우먼 2016-08-02 1879
1429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슬럼프에 빠졌다면 캣우먼 2016-08-02 2690
1428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봄날엔 편지를 캣우먼 2016-04-29 4083
1427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첫 독립출판물을 내기까지 캣우먼 2016-04-29 3315
1426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판매지수와 순위스트레스 캣우먼 2016-04-29 3026
1425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글이 잘 써지는 호텔? 캣우먼 2016-04-29 3708
1424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저자 프로필에 대하여 캣우먼 2016-03-07 4680
1423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치밀하고도 우발적인 표지디자인 캣우먼 2016-03-07 3823
1422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아이를 키우면서 글쓰는 일 캣우먼 2016-03-07 4831
1421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연재결정은 어려워 캣우먼 2016-01-19 5712
1420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출판기회의 다양화 캣우먼 2016-01-13 4140
»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마감을 했다! 캣우먼 2016-01-13 3986
1418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글쓰기 변천사 캣우먼 2016-01-13 4168
1417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이미지에 대하여 캣우먼 2016-01-13 5364
1416 <책과 삶>1월호 : 팬들과의 거리 캣우먼 2016-01-13 4163
1415 <책과 삶>12월호 : 창작은 계속된다 캣우먼 2016-01-13 3732
1414 <책과 삶>11월호 :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캣우먼 2016-01-13 4033
1413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연애소설을 쓰는 일 캣우먼 2016-01-13 4008
1412 <채널예스: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사랑스러운 여자들 캣우먼 2016-01-13 6872
1411 <중앙일보>나를 뒤흔든 2015년의 책 캣우먼 2016-01-13 4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