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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에 빠졌다면

일주일째 슬럼프다. 아무 글도 쓰기 싫다. 성장기시절, 1-3년에 한번씩 외국을 옮겨 다니면서 살다 보니 무엇에든 쉽게 질리는 편인데 글쓰기는 십 년 넘게 오래도 한다 싶었다. 한데 올게 왔나 보다. 덤으로 결혼생활도 무려 16년을 어떻게 했나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슬럼프의 정신상태는 이렇다. 내 안에서 우러나와 쓰고 싶은 글도 없고 써놓은 글을 보면 생기가 없다. 지금까지 낸 책들도 얕고 알맹이가 없는 것만 같다. 작가업의 기본 사이클 - 글을 써서 책을 내고 독자들을 만나고 또 다시 글을 써서 책을 내고 독자들을 만나는 - 이 지겨워졌다. 세상은 이토록 책으로 넘쳐나는데 뭐 잘났다고 나까지 책내서 뭐하나 싶다. 소재도 고갈되었고 나이도 들어서 앞으로는 더 이상 책을 쓰지 못할 것 같다. 지표를 잃고 주저앉은 막막한 느낌.
사실 어느 정도 이쯤에서 슬럼프를 겪으리라 예상도 했다. 지난 5년간 쉼 없이 9권의 책을 써냈다. 중간중간 재충전을 하라는 조언도 무시하고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사람처럼 절박함으로 작업을 해왔다. 최근작인 장편소설 <나의 남자>를 출간하고 나서 정신적 공황이 올 거라고 직감해서 일부러 독립출판물이라는 일거리를 만들었다. 독립출판물 여행서 <임경선의 도쿄>의 작업이 끝나자 이번에도 일의 공백기가 오는 것이 두려워 서간집 에세이원고를 서둘러 준비했고 한 달 만에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써냈다. 그런데 한숨을 돌리고 다시 처음부터 원고를 읽어보니 한마디로 거지같았던 것이고 그때를 기점으로 팡 터지며 나는 확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그나마 나의 긍정적인 부분은 고민이 있을 때는 소문을 낸다는 점이다. 주변의 창작자들은 저마다의 슬럼프를 자랑했다. 아는 만화가A는 무려 3년간 슬럼프였다고 하고 만화가B는 매번 장편연재를 하나 끝낼 때마다 슬럼프를 겪는다고 했다. 한 소설가는 자신도 지금 슬럼프라고 하소연이고 또 다른 저자는 매번 연재원고 마감할 때마다 슬럼프지만 겨우 꾸역꾸역 원고를 해서 보낸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모두가 내게 조금만 쉬어라, 쉬는 것을 즐겨라, 쉬다 보면 슬슬 입질이 들어와서 새 애인처럼 좋을 거다, 장편소설을 쓴 후엔 쉬어줘야 한다고 했다. 다 고마운 조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작업하고 있는 책 원고’가 없다는 것은 내게 우울하고 불안한 일이다. 내가 무용지물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들게 한다. 슬럼프 중에 읽은 책들도 어째 참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김동영/김병수의 에세이<당신이라는 안정제>에서는 심한 공황장애를 앓는 작가 김동영도 계속 그 와중에 글을 써나가고 있었으며 스티븐 킹의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은 27년에 걸쳐서 감옥방의 벽을 파내서 기어이 탈옥하는가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에세이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로서의 ‘지속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었다.
그래서 닥친 이 슬럼프를 어떻게 할 거냐고? 주변의 조언대로 놀만큼 놀면서 충분히 바닥까지 친 다음에 저절로 다시 올라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역시 그것은 내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 슬럼프라는 늪에서 빠져 나오려면 조금이라도 움직이게끔 하는 ‘계획’이 필요하다. 당장 지금 써놓은 원고는 거지같은데 그렇다고 달리 새롭게 쓰고 싶은 글이 없다, 가 문제라고 한다면 1) 정말 지금 써놓은 원고가 거지같은지 제3의 객관적인 눈으로 봐줄 편집자에게 조언을 구한다 2) 당장 쓰고 싶은 글이 없다면 내가 좋아할만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런 걸 쓰고 싶다’는 자연발생적인 감정이 우러나오게끔 유도한다.

그래서 지금은 위의 1)과 2)를 하고 있는 중이다. 멈춰 서있는 것이 영 불편하다면 어떻게든 앞으로 걸어나가야만 한다. 플랜A에 이상이 생겼다면 플랜B를 실행해보고 그것도 안 되면 플랜C를 고민해볼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지만 내가 해볼 수 있는 것을 차례차례 해보는 것, 그것 밖엔 없을 것 같다.

글/임경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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