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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을 보면서

여름에 갈 가족휴가를 미리 당겨서 다녀왔다. 행선지는 인도네시아 발리, 리조트는 초등학생 딸아이가 놀기 좋게끔 클럽메드 발리로 정했다. 클럽메드 리조트는 명징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G.O.(Gentle Organizer)의 존재다. GO들이란 일종의 리조트의 ‘친구들’로서 한마디로 손님들을 다양한 의미에서 ‘즐겁게 지내도록’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전세계에서 모집된 최소 삼 사십 명의 젊은 남녀 GO들이 있는데 그들이 하는 일은 대략 이렇다. 클럽메드 소개 및 안내하기, 식사시간에 손님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대화나누기, 수영장에서 이벤트 진행하기, 해양스포츠 강습하기, 매일 밤 쇼에서 연기와 춤을 선보이기, 부모들을 위해 어린아이들을 돌봐주고 놀아주기,등등. 리조트 내에서 지나칠 때마다 그들은 수시로 인사를 하고 친근한 대화를 건다. 대체 언제 쉬는지도 모르게 오전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늘 신나고 흥이 난 웃는 얼굴로 그들은 손님 곁을 맴돈다. 나는 여행을 가면 늘 흥미 있게 지켜보는 것이 다양한 직업의 세계인데 그 중 가장 놀라운 직업 중의 하나는 클럽메드 GO들이라고 생각한다. 말수가 적고 늘 적당히 우울한 나로서는 저렇게 ‘흥이 나 있는 상태’로 하루 종일 지내야 한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정말 대단하고 힘들어 보였다.

발리 아융강에서 래프팅을 할 때 또 다른 ‘극한직업’과 만났다. 고무보트를 같이 타고 래프팅을 안내하는 까무잡잡한 현지인 가이드들이다. 보트를 머리에 이고 계곡의 엄청 긴 계단을 맨발로 내려가서 손님들 네 다섯 명을 태운 후 약 한 시간 동안의 래프팅을 인솔한다. 손님들은 처음 해보는 노젓기가 서툴다 보니 아무래도 노젓기는 대부분 그들의 몫. 혼자 대여섯 명이 탄 보트를 영차영차 움직인다. 그 와중에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손님들의 흥을 돋구는 동시에 때때로 짓궂은 물장난도 쳐준다. 대체 하루에 몇 회씩 래프팅 가이드를 하는지 가늠이 안 되지만 내가 보기엔 하루 한 번도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일이 터졌다. 내가 지난 삼 년간 격 달로 주최해온 ‘이기적인 특강’에 안철수 국회의원이 일주일 정도의 기한을 남기고 강연을 수락한 것이다. 정치인의 스케줄이니 어쩔 수 없다. 서둘러 매번 강연을 진행해온 장소로 바로 대관신청을 했는데 수락 며칠 후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대관을 못하게 되었다고 번복을 해서 부랴부랴 다른 강연장소를 섭외해야만 했다. 안철수의원 측의 전담 언론사 사람들도 참석해야 한다고 해서 또 한 번 공간문제로 골머리를 썩었다. 결국 다행히 장소를 구했지만, 강연날짜를 불과 며칠 앞둔 상태이다 보니 피 말리는 시간들이었다. 그 동안 내내 나는 안철수 의원의 비서실장과 연락을 취하며 상황을 협의하고 조정했다. ‘정치인의 비서실장’이라는 직업도 극한직업이었다. 얼마나 바쁘신지 전화가 바로 연결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문자메시지의 답신도 한참 후에야 받곤 했다. 정치인의 비서실장은 세세한 것 하나하나 예민하게 하루 종일 챙겨야 하는 직업이었다. 그렇다고 비서실장의 상사인 그 정치인이 팔자가 편하냐면 그렇지도 않은 건 확실하다. <안철수의 생각>을 다시 읽으면서 이 분도 얼마나 다양한 사안에 대한 공부와 고민을 많이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할까를 상상해보면 아득하기만 했다. 정말이지 세상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지난 이주간 이토록 동적이고 시끄럽고 치열한 직업의 세계를 가까이서 겪다 보니 그에 비하면 글을 쓰는 직업이란 얼마나 정적이고 고요하고 ‘나홀로’인가 싶었다.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하고 귀국한 한강 작가의 기자회견을 읽는데 ‘최대한 빨리 제 방에 숨어서 글을 쓰고 싶어요’라는 말이 귀에 쏙 꽂혔다. 작가라는 직업의 가장 치열한 시간은 묵묵히 혼자 글을 쓰는 일임을 새삼 통감했다.

글/임경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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