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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삶

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와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인생을 그려낸 영화 두 편을 보았다. <본 투 비 블루>와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소네트>다. 각기 다른 의미에서 예술가의 삶에 대해 생각을 남기는 영화였다.

쳇 베이커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웨스트코스트 출신 백인 재즈 트럼펫 연주자로서 뉴욕의 전설적인 재즈클럽 <버드랜드>에 기라성처럼 데뷔한다. 이내 재즈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화려한 시절을 보내지만 중증의 헤로인 중독에 빠져 경제적 가정적 파탄으로 생활이 망가지고 급기야는 트럼펫을 불지 못하는 구제불능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쳇 베이커는 어떻게든 다시 트럼펫을 연주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세상은 물론 오랜 매니저마저 그를 등지고 만다. 하지만 그를 지켜봐 주는 헌신적인 연인, 제인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쳇 베이커는 마약의 도움 없이 서서히 트럼펫을 다시 불 수 있게 되고 시골읍내의 피자가게 무대에 서는 등 초심으로 돌아가 고군분투한다. 꾸준한 노력으로 예전 매니저의 마음을 움직인 쳇 베이커는 새 앨범을 녹음하고 수많은 제작자들 앞에서 감동적인 트럼펫 연주와 보컬을 선보이며 재기의 희망을 다진다. 그리고 마침내 재즈클럽<버드랜드>의 무대에 다시 설 기회를 거머쥔다. 하지만 <버드랜드>공연 당일, 제인도 곁에 없는 와중에 라이벌로 의식하던 마일스 데이비스도 공연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쳇 베이커는 심리적인 압박감에 무너지며 백스테이지 대기실에서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버리고 만다. 성공적인 공연으로 재즈아티스트로서 재기에 성공하는 대가로 다시 헤로인 중독자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이 영화<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소네트>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무대 위에서의 공포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인생에서 마주칠 수많은 변화는 어떻겠어?” 그렇게 말하던 재능 넘치는 피아니스트로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던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쳇 베이커와 사뭇 다르게 예술을 지속하기로 결정한다. 한 때는 공연하는 피아니스트로서 수많은 청중들의 갈채와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재력가의 절대적인 지원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진정한 예술은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한창 정점에 서있을 때 자발적으로 무대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뉴욕의 작은 스튜디오 아파트에 살면서 피아노 선생님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주변사람들은 재능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 재능이 아깝다며 그를 극구 말리지만 자신의 재능을 제자들에게 주기로 결심한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음악적인 영감을 주는 것을 통해 그만의 예술세계를 지켜나간다.

두 예술가의 살아가는 방식은 어쩌면 대조적이다. 쳇 베이커는 강렬한 예술적 재능과 충동을 터트리고 불사르기를 욕망했고 그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반면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스포트라이트에서 손수 내려와 자신의 재능을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나누는 삶을 택한다. 일견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삶의 방식이 건실하고 ‘좋아’보일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예술가가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고 예술을 영위해나가는 방식에 맞고 틀리고는 없다. 그저 각자의 무게를 감당할 뿐이다. 인생의 전환점이 될,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야 할 <버드랜드>공연을 앞두고, 쳇 베이커가 극심한 고민 끝에 대기실에서 헤로인 주사의 힘을 빌린 일은 인간적으로는 너무 안타까웠지만 동시에 그의 절실한 마음이 너무 이해가 갔다. 마지막 기회인 이번 무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연주를 보여줄 수만 있다면 난 그 외의 모든 것을 버려도 좋다는 그 예술적 열망을 너무 알기에 그저 관객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연주를 벅찬 감정으로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예술가는 그저 자신의 머리가 아닌, 마음이 시키는 대로, 길을 걸어나갈 뿐이다. 재기에 성공해서 정상의 재즈아티스트로서 활동하게 되지만 결과적으로 헤로인 중독으로 죽어버린 쳇 베이커의 일생을 누가 어떤 잣대로 실패한 삶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예술가에게 재능은 존재의 본질 같은 것. 그 재능을 어떻게 다루면서 살아가야 할까. 쳇 베이커처럼 짧고 굵게, 뜨겁고 강렬하게 불사르며 살아갈까, 혹은 세이모어 번스타인처럼 가늘고 길게, 겸손하고 마일드하게 살아갈까. 대중의 사랑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혹은 더 이상 자신에게 재능이 남지 않았다고 판단되었을 때, 쳇 베이커의 아버지처럼 중도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예술을 포기함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재능의 되살아나기를 열망하며 끝까지 노력하며 꿈을 쫓을 것인가. 다른 잘나가는 예술가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뚝심 있게 나만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예술가들을 향한 질투와 경쟁을 되레 나의 재능발휘를 위한 자극제로 이용할 것인가. 예술가들 저마다의 삶은 치열한 인생의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진다. 나는 어떤 작가로 나아갈 것인가. 나는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추구하는가.

글/임경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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