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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본다. 바텐더로 일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을 키우는 사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설가지망생, 낮엔 음식배달을, 밤에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 막막함과 불안감에 포기해버릴까 싶다가도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데뷔할 수 있을 거라는 꿈을 품고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주간만화 편집자들과 만화가들의 희로애락을 그려낸 일본드라마 <중쇄를 찍자!>에는 원로 만화가 미쿠라야마 선생 밑에서 십년째 문하생으로 일하는 ‘누마타’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청년’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애매한 게 그는 이미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다. 스무살 때 만화잡지 신인상을 타는 바람에 만화가 데뷔의 꿈을 품고 이 길로 들어섰지만 아직 십년 째, 고참 문하생이 되어갈 뿐, 자신의 연재만화를 가진 정식 만화가로 데뷔를 못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만화컨셉을 편집자에게 설득시키는 일에 끊임없이 실패하는 사이 한참 어린 다른 후배 문하생들은 차례차례 먼저 데뷔해서 문하생의 신분을 벗어난다.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는 후배들을 보며 속으로 고통스러워하지만 누마타는 그럼에도 이 단어만은 잊지 않으려고 다짐한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언젠가는.

새로 들어온 후배 문하생들에게 ‘난 여기 밥이 맛있어서 십년씩이나 문하생 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둥의 안쓰러운 자학농담을 던지면서.



어느 날 미쿠라야마 선생의 작업실에 신참 남자문하생, ‘나카타’가 들어온다. 그림실력은 서툴고 성격도 반사회적이지만 미쿠라야마 선생도 은연중에 나카타의 숨겨진 재능을 높게 평가한다. 우연히 나카타의 만화콘티를 훔쳐본 누마타는 한눈에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에게 격심한 질투와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은 그 오랜 기간동안 제대로 싸워보지도, 부딪혀보지도 않고 ‘언젠가는’ 인정받는 날이 오겠지라는 근거없는 낙관에 의존해왔음을 직시한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라는 자부심 하나에 마음을 기대며. 급기야는 마흔살 생일을 기점으로 만화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가업을 잇기로 결정한다.



누마타는 자신의 청춘을 바쳤던 미쿠라야마 선생의 작업실을 마지막으로 걸어나오면서 속으로 되뇌인다.



평생 만화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그 안에서 행복했다.

현실따위는 필요없을 정도로.

만화 속에서만 살아가고 싶었다.

만화가를 추구하는 동안은 특별한 사람일 수 있었다.



자신의 오랜 꿈과 작별하는 누마타의 마지막 독백이 진하게 가슴을 울렸다.

재능의 있고없고와 승패의 갈림길은 뭘까.

<중쇄를 찍자!>의 만화주간지 ‘바이브스’ 부편집장 이오키베는 말한다. ‘작가 본인이 스스로 극복해내야 할 벽이 있다’고. 편집자 포함 주변에서 아무리 도움을 준다고 해도 결국에는 본인이 스스로를 움직여야만 한다고. 혼자서도 멀리까지 헤엄쳐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누마타는 결국 그것을 못한 것이었고 그것을 하지 못할 거라는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것이었다.



가만 보면, 꿈을 이룬다는 것은-

후천적인 노력만으로도 안 되고

선천적인 재능만으로도 안 되고

운만으로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된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을 때 우리는 언제까지 꿈을 향해 노력해야만 할까.

노력해도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언제까지 꿈을 꾸고 언제부터 현실을 직시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실은 버티는 것 자체가 재능일까.



데뷔에 성공했다고 해도 그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문학업계에서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그토록 염원했던 신인문학상을 거머쥐었건만 그 후에 원고청탁이 들어오지 않거나 가까스로 첫 책을 냈다고 해도 판매저조로 인해 존재감이 사라지는 신인작가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삼십오년간 최전선에서 작가생활을 해낸 무라카미 하루키는 누구나 조금 재능이 있으면 소설 한두권쯤은 쓸 수 있지만 작가로서 지속가능한 것이야말로 진짜 어려운 일임을 강조한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한부 선물이고, 그것을 어떻게 보존하고 버전업해나갈지가 ‘진짜’ 재능의 승부처라는 의미일 것이다. 휴- 산 넘어 산이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실제 발을 푹 담궈보기 전에는 그 답을 알 수 없다는 것이 함정.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만이라도 많은 시간과 고통을 그 대가로 치뤄야 한다는 것이 ‘꿈’이 부과하는 엄중한 숙제인 셈이다.



글/임경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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