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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



‘첫’ 작품의 기쁨



얼마 전 소설<쇼코의 미소>를 출간한 최은영 작가의 트윗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저의 첫번째 책이 곧 나와요. 제목은 <쇼코의 미소>입니다.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정용찬 여사(86세)께서 보내신 카톡. 책이 나와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쁘니 마음이 좋다.’ 최은영 작가의 할머님이 손녀에게 보내신 축하카톡메시지는 달달했다. 그녀의 설렘과 행복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불현듯 내 첫 장편소설이 나왔을 때가 기억났다. 그 전에도 단편소설집을 냈었지만 ‘첫 장편소설’이 출간되었을 때는 그 어느때보다도 감회가 특별했다. 왜냐하면 그만큼 거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첫 장편소설 [기억해줘]의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2013년 가을부터 2014 여름까지 이 소설을 썼던 시간들에 대해서는 선택적 기억상실증처럼 기억 나는 것이 별로 없다. 가끔은 '내가 언제 이런 걸 썼지?'라며 불가사의한 기분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몇 가지 잔상은 남는다. 쓰기 전에 염두에 두었던 플롯은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까 전혀 다른 플롯으로 쓰고 있었다. 도중에 수없이 캐릭터와 스토리전개도 바뀌었다. 막상 여행을 떠나보면 원래의 계획대로 풀리지 않듯이, 장편소설을 쓰는 일도 자욱한 안개속을 헤매면서 헤쳐나가는 일이었다.



처음 빈 백지를 예쁜 한글폰트 글자들로 채워나가는 일은 흥분되는 일이었다. 감정이 흐르는 대로, 생각이 나는 대로 자유롭고 충동적인 자신을 제어하지 않는 일은 무척 기분이 좋았다. 허나 쾌감은 잠시, 이내 끈끈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헐렁하게 채워놓은 내용을 이젠 확 조여줄 차례. 약A4 100장분량을 종이로 출력 후, 수정을 해야한다.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원고와 종이로 출력해서 보는 원고는 너무도 달라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당시 이런 글을 썼을까? 나 미쳤나?’
이 글 뭉치들은 앞뒤전후 논리전개가 맞지 않고,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앞에 두고 너무나 과묵하거나 지루했고, 정사장면은 저 혼자 경박하게 신이 나있다. 첫 수정의 운명은 그래서 대개가 ‘전면적 수정’이다. 어찌어찌해서 장편소설 초고를 완성해서 출판사에 보냈다.



부적합판정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했다. 출판사와 중간조율을 하는 마음으로 보냈지만 역시 여러 편집자들의 가차없는 비판을 들을 때는 아리고 속상했다. 또 한 번의 전면적 수정을 거쳐2고를 썼고, 그 후 3고와 4고를 썼다. 3고를 보내고 나서였던가, 이번에는 그래도 대략 통과되겠지 싶었는데, 딸아이의 방을 청소하던 중에 평소 울리지도 않는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고 나는 직감적으로 이번 원고도 통과가 되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출판사에서 좋은 소식이 아닌 경우는 보통 직접 전화를 걸어서 말하기 때문이다. 내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담당편집자는 신중하고 무거운 어투로 소설원고 검토결과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잡고 있던 청소 밀대를 바닥에 내려놓고 맥없이 전화기를 든 체 딸아이의 어린이침대에 누웠다. 수화기너머의 담당편집자 듣기 부담스럽게시리 한숨을 얼마나 깊게 내쉬었는지 모른다. 머리속이 캄캄했다. 떼쓰는 아이처럼 짜증 섞어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했다. 담당편집자는 그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고 문제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원고를 잘 쓰지 못해서 그런 것 뿐인데.


단편소설과는 달리 장편소설은 아무리 단순한 이야기라도 쓰는 동안 몇 번이나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는가 하면, 암호를 푸는 것처럼 머리를 쥐어짜야 할 때도 있었다. 며칠을 생각해도 돌파구를 못 찾고 막막해하며 밤새 악몽으로 끙끙 앓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면 어느새 스르륵 그 문제가 절로 풀려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날은 정말이지 온종일 행복한 희망으로 가득차있었다.
조증과 울증의 무한 롤러코스터의 나날들. 중간에 여러 불안한 과정도 거쳤지만 어쨌든 마침내 첫 장편소설의 원고는 출판될 수 있었다.



김연수 작가는 산문<소설가의 일>에서 ‘소설가는 소설쓰는 일 외에 애시당초 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시간관리를 한다’고 썼는데 그와 엇비슷한 느낌으로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놓고도 제대로 쉬거나 놀지도 못했다. 글을 쓰는 일 외의 모든 시간들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원고를 매만지던 열기와 흥분이 체 가시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원고를 넘긴 다음에도 매일아침 단골카페에 나가 다음에 작업할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소설원고를 붙들고 있을 때는 그토록 힘들어했으면서 막상 끝나니 이번에는 한창 소설을 쓰던 그 시기를 몸으로 그리워했다. 고생했던 기억과 감각들만은 – 초고를 쓰면서 진도가 꽉 막혔던 때라거나, 같은 원고를 거듭 수정하느라 토나올 지경이 되었던 일이나, 편집자의 너무 정확해서 뼈아픈 중간리뷰를 받을 때라거나 – 선별적으로 잊어갔다. 대체 언제 원고지 600매를 채워냈는지도 아득하기만 했다.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면 임신출산의 고통을 망각해서 또 다시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듯 다음에는 어떤 소설을 써볼까 백일몽을 꾸기도 했다. 첫 장편소설을 쓰고 난 후의 그 형언하기 힘든 행복하면서도 허탈한 느낌은 아이 낳았을 때와 흡사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작업했던 9개월은 한 아이를 임신해서 낳기까지의 기간이기도 했다.



글/임경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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