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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나비> 서평


살면서 나비를 유난히 많이 만났던 곳은 동유럽의 루마니아였다. 1994년 봄, 이십대 초반이었던 나는 동유럽의 길고도 추운 겨울을 버텨내고 마침내 눈부신 빛을 내뿜는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초록빛 들판이 어디에나 눈부시게 널려있었다. 잠시 차를 멈춰세우고 초원을 가로질러 산책을 하노라면 이름모를 들꽃이 주변에 한가득 피어 있었고 그 사이로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몽환적인 풍경은 어렸을 적 동화책의 삽화에서만 봐왔던 자연의 아름다움이 현실에서도 실제 존재함을 알려주었다. 루마니아 외에도 여러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살아봤지만 유럽에서 보았던 봄날의 들판, 숲, 초원은 단연코 특별했다. 꾸며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인데도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아름다웠고 그 안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가슴벅차게 행복했다.

헤르만 헤세의 <나비>를 읽노라면 그 무렵 내가 목격했던 그 눈부신 광경이 생생하게 눈 앞에서 재현되었다. <나비>는 독일태생의 작가 헤르만 헤세가 나비에 관해서 쓴 산문과 시를 모아서 엮은 책이다. 헤세는 <데미안><수레바퀴 밑에서>등의 작품으로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가 되었지만 그는 사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소박한 일상은 영위했다. 헤세의 삶 속에서는 자연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줄곧 전원생활을 동경해온 헤세는 중년부터 인생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스위스의 작은 시골마을, 몬타뇰라에 정착해서 자연을 벗삼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자발적으로 은둔했다. 그래서그런지 헤세의 작품에는 유달리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헤세는 특히 정원을 가꾸는 데에 발군의 재능을 발휘했다. 정원은 작품활동을 하는 그에게 사실상 치유의 공간으로도 작용했다. 정원을 가꾸며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삶의 기쁨을 누리던 헤세에게 ‘나비’는 전원생활의 살가운 동반자가 아니었을까.

헤세는 <나비>를 통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나비’가 차지해온 존재감과 의미를 이야기한다. 유년기-청소년기-청년기-중장년기를 관통하며 어떻게 나비와 만나게 되고 얼마나 매료되어 왔는지를 고백하며 나비와 관련해서 일어났던 인생의 소소한 사건들을 짚어간다. 헤세는 유년기에는 나비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성장하면서 나비를 수집하고 소유하려는 ‘수집가’로서의 열망을 가지게 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나비를 쫓는 대신, 나비 자체가 발산하는 아름다움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관조적으로 즐기게 된다. 이렇게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대상은 변함이 없다하더라도 좋아하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변화하기도 한다.

<나비>를 읽으면서 무엇때문에 헤세가 나비라는 생물에게 그토록 매료되었는지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나비가 상징하는 아름다운 가치들은 헤르만 헤세가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와도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가령, ‘자유로움’이라는 가치.
나비는 그저 하늘하늘 바람에 몸을 맡기며 춤 추듯 날아와서 어딘가에 내려앉다가 또 내키면 날개를 펼쳐 살랑거리며 어딘가로 날아가버리고 만다. 그 모습은 흡사 공기처럼 가볍고 매끈하다. 나비는 그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헤르만 헤세도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고 추구했다.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오늘을 마음껏 살아갈 수 있는 삶. 자신의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충동대로 살고, 일상이 곧 예술이 되는 삶. 헤세는 글을 쓰고 싶을 때는 글을 쓰고, 꽃과 나무가 그리워질 때는 정원을 가꾸고,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면 저 멀리 들판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문득 방랑욕구가 생기면 훌쩍 여행을 떠났다.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영혼이 ‘구름’과 닮았다고도 생각했다. 하나의 모양으로 굳어지지 않는 구름, 머물기보다는 자유롭게 떠도는 구름 말이다. 구름도 나비처럼 그 누구의 뜻대로도 조종당하는 일이 없었다. 한 편, 헤르만 헤세는 러시아 출신 아버지와 프랑스어를 쓰는 스위스인 어머니를 두고, 태어나기는 독일에서 태어나는 바람에, 하나의 국가나 민족에 심리적으로 종속되어 있지도 않았다. 헤세의 글은 그래서 한없이 자유로운 ‘경계인’의 태도를 지녔다.

가령, ‘홀로 설 수 있는 용기’의 가치.
나비는 무리짓지 않고 혼자서 훨훨 날아다닌다. 혼자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헤세는 [홀로]라는 시를 통해 홀로 설 수 있는 인간을 예찬한다.

‘인생의 길은 말을 타고 갈 수도, 자동차로 갈 수도, 둘이서나 셋이서 갈 수도 있지만, 마지막 한걸음만은 혼자서 걸어야 한다. 그리하여 아무리 힘겨운 일이라도 혼자 해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지혜다.’

헤세는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느 누구의 시선에도 영향받지 않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헤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모두 혼자 힘으로 배우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나 언론의 호들갑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오로지 내 안의 목소리에만 무심하게 귀를 기울였다. 헤세에겐 어디까지나 인간은 누구나가 다 혼자였다.

‘살아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바깥이 아닌 ‘자기 안’에서 구원을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고독의 시간은 헤세에게 고통이기보다는 아릿한 행복감에 가까웠다.

마지막으로 가령, ‘찰나’의 가치.
나비는 조금 특별한 존재이다. 나비는 오직 마지막 단계인 번식을 위해 화려하고 강렬한 날개를 두르며 아주 짧은 시간을 살다 가버린다. 찬란한 사랑과 빛나는 변신으로 그렇게 짧은 생을 사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나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들은 모두 ‘찰나’에 있는 것이 아닐까? ‘행복’이라는 감정조차도 나는 개인적으로 오로지 ‘찰나’에 머문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은 어쩌면 늘 그렇게 우리 곁을 덧없이 스쳐지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머물기보다는 이내 떠나버리기에, 우리는 도리어 더 매혹당하고 갈망하는 것일지도. 찰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헤세의 말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나는 나비를 비롯해 다른 덧없는 아름다운 것들과 항상 유대감을 느꼈다. 반면에 지속적이고 고정된 관계, 이른바 확고한 구속은 나를 행복하게 한 적이 없다.’

20세기 독일작가들 중 헤르만 헤세만큼 나비와 직접적인 유대를 표시한 작가가 있었을까. 나비는 천성적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자유를 갈망하던 소년이던 헤세의 소설과 시, 산문에 빠지지 않고 상징적으로 등장해왔다.

‘내 인생에서 커다란 두 가지 즐거움이 있었다면 그건 나비잡기와 낚시였어. 다른 건 모두 시시했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자 <데미안><수레바퀴 밑에서>등 수많은 문학작품으로 전세계 독자들을 오랜기간동안 매료시켜온 헤르만 헤세. 그리고 자연 속의 그의 뮤즈인 ‘나비’를 다시 만나보는 일은 누가 뭐래도 설레는 일이다. 헤세의 글을 통해 나비의 눈부신 아름다움과 생생한 환희를 느낄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글/임경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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