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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스콧 피츠제럴드 단편선] 서문 추천사


아름다운 상실의 시대


스콧 피츠제럴드는 가장 화려하고 거품이 많았던 미국의 1920년대를 풍미한 당대의 인기작가였다. 미국은 제1차세계대전후 호경기로 들썩이며 새로운 문화를 싹튀우는 가운데 그에 걸맞는 영웅을 원하고 있었다. 젊고, 핸섬하고, 두려움을 모르고, 젊은이들의 마음을 유창하게 대변해주는 스콧 피츠제럴드는 그야말로 사회가 필요로 했던 문학의 아이콘이었다. 사십대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스콧 피츠제럴드는 수많은 소설작품들을 통해 1920년대 미국의 초상을 생생히 그려냈다. 그는 정경이나 분위기 묘사에 특히 탁월해서 읽다보면 마치 내가 지금 이 순간 그 시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게 한다.

장편소설 <위대한 개츠비>로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린 스콧 피츠제럴드이지만, 알고 보면 그가 가장 많이 썼던 것은 장편이 아닌, 단편소설들이었다. 그가 생전에 출간한 단편소설작품은 모두 160 여편에 달하는 데 세상의 모든 작가들을 다 둘러봐도 스콧 피츠제럴드만큼 단편소설을 많이 써낸 작가는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그는 어떻게 그토록 많은 단편소설을 발표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스콧 피츠제럴드만큼이나 유명한 그의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에게 있었다. 스콧의 아름다운 아내 젤다는 유행의 최첨단에서 화려하고 자유로운 소비생활을 만끽하며 사교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눈부신 존재였다. 실제 스콧과 젤다는 지성과 카리스마를 과시하며 ‘재즈시대’의 롤모델 커플로 이름을 날렸다. 스콧에게 글소재의 영감을 주기도 했던 젤다였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낭비벽이 심하고 사치를 즐겼기에, 스콧은 결혼 뒤 늘 금전적으로 쪼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젤다가 원하는 화려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콧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잡지에 단편소설을 지속적으로 투고하는 일 뿐이었다. 당시의 대중대상 잡지의 원고료는 아주 높았고, 장편소설을 써서 인세를 기대하기보다는 주문을 받고 단편소설을 써서 그 원고를 파는 쪽이 경제적 보상이 훨씬 높았던 것이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어릴 때 부친의 경제적 파산으로 그 누구보다도 가난을 뼈저리게 겪었던 경험이 있어서 돈과 재력에 대한 남다른 집착과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대중이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기대했던 것은 밝고 세련되면서도 어딘가 조금은 슬픈 도시소설이었다. 스콧은 만화경처럼 화려했던 당시 재즈시대의 생활상과 문화의 면면들을 천재적인 재능으로 단숨에 써내려갔다. 그는 ‘단편소설따위, 하루면 쓸 수 있다’고 장담했고 실제로 한밤중에 시끌벅적한 파티에서 귀가하고 와서는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밤새 단편소설을 슥슥 한 편 써낸 후, 날이 밝아오면 다시 또 다른 파티로 놀러나가는 와일드한 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단편소설을 삽시간 만에 뚝딱 써냈다고 해서, 대중잡지에 발표한 작품이라고 해서, 그가 쓴 단편소설들이 결코 질이 떨어지는 작품들은 아니었다. 스콧은 자신의 출판에이전트인 해럴드 오버에게도 ‘나는 장편소설을 구상하듯이 모든 단편소설을 구상한다’고 고백했고 그의 단편소설들은 흥미로운 플롯과 매력적인 등장인물, 서정적이면서도 산뜻한 문체, 실험적인 기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재미있으면서도 진지했고,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몇몇 단편소설 작품들은 숨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탁월하게 쓰여졌다. 그 작품들은 피츠제럴드 단편소설을 대표하는 걸작들로서 지금까지도 세계의 많은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스콧 피츠제럴드 단편소설 문고판에는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다섯 편의 단편소설-<다시 찾은 바빌론><기나긴 기다림><분별 있는 일><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해외여행>-이 수록되어 있다.

스콧 피츠제럴드 단편소설 문고판에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소설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무드는 아마도 ‘상실감’일 것이다. 피츠제럴드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물질적 성공과 젊음과 사랑, 아름다움 등을 얻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주인공들은 설사 그러한 것들을 얻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그것들을 상실하거나 추구하는 과정 중에 생각치도 못한 다른 소중한 것들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비극적인 상실감은 미국의 1920-1930년대라는 격동의 시기에 구현되고 스러져간 무수히 많은 아메리칸 드림들을 연상시킨다.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인생을 여한없이 살아나가려고 고군분투해보지만 애초부터 인생은 지는 싸움이었다. 결국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깊은 상실감이었기에 피츠제럴드 소설 속 주인공들은 누구나가 예외없이 퍽 센티멘탈하다. 그리고 우리는 소설속 등장인물들의 그러한 예민한 감수성에 공감하고 그 복잡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다섯 편의 단편소설들은 공통의 아우라는 가지면서도 동시에 저마다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우선 단편소설 <다시 찾아온 바빌론>은 피츠제럴드의 독자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도스도예프스키와 더불어 스콧 피츠제럴드를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로 꼽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 작품을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고 있다. <다시 찾아온 바빌론>의 주인공 찰스 웨일스는 1929년의 주식시장 폭락전만 해도 아내와 함께 고대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처럼 화려했던 파리에 살면서 호사스러운 일상을 보냈지만 주가 폭락으로 모든 것을 잃고 스스로도 알코올중독자로 망가진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동유럽에서 새롭게 기반을 다지고 자신이 과거에 상실한 것들 중의 일부라도 다시 되찾기 위해 용기내서 다시 ‘바빌론’이었던 파리로 돌아와보지만, 과거의 망령들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옭아매기만 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한 번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은 (왜 당시에는 그 소중함을 몰랐을까) 결코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없다는 슬픈 인생의 교훈을 우리는 찰스를 통해 통감한다. 하물며 이젠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찰스의 독백처럼 ‘이제 혼자서 그렇게 많은 멋진 생각과 꿈을 가질 수 있는 젊은이’도 아닌 것이다.

단편소설 <분별있는 일>의 주인공 조지 오켈리는 눈으로는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지만 느낌으로만 알 수 있는 어떤 감각 혹은 감정을 장렬하게 상실한다. 조지 오켈리는 아름다운 여성, 존퀼 태리와의 결혼을 갈망하지만 자신의 불안정한 경제력으로 청혼에 실패한다. 그녀를 가지고 말겠다는 집념 하나로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 성공을 이루어내지만 귀국해서 존퀼에게 찾아가는 동안 무엇인가가 미묘하게 뒤틀려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존퀼의 집으로 찾아가 이제야 당당하게 청혼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녀의 입술에 막상 키스하면서 조지 오켈리는 이젠 더 이상 ‘아무리 영원히 찾아 헤매더라도 잃어버린 지난 4월의 시간은 절대로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두 번 다시 그 시절에 느꼈던 순정과 갈망은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알았을 때 조지 오켈리가 느꼈을 가슴의 먹먹함이 행간으로 전해져왔다. 인간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잔인하도록 슬픈가. 이미 많은 것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절로 변해가고 마는 것이다. 그러한 아이러니를 품고 인생은 또 흘러가는 것.

단편소설 <기나긴 외출>의 킹 부인은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아주 큰 상실의 경험을 겪지만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여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던 킹 부인은 이제 마침내 다시 세상으로 나가 정상인으로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정식으로 요양원에서 퇴원하기 전, 의사들의 허락 하에 남편과 함께 해변으로의 여행을 떠나려던 날 아침, 남편은 자동차를 몰고 아내를 데리러 오는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 비극적인 소식을 듣고 겨우 호전된 킹 부인의 정신상태가 급격히 악화될 것을 우려한 의사들은 당분간 킹 부인에게 사실을 숨긴다. 킹 부인은 ‘남편이 늦어지고 있네요. 물론 실망스럽지만 내일 온다고 하네요.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왔는데 하루쯤 더 기다린다고 무슨 대수겠어요.’라며 그로부터 매일 아침만 되면 곱게 단장을 하고 요양원 현관문 앞으로 내려와 자신을 데리러올 남편을 희망적으로 기다린다. 보다못한 의사들이 킹 부인에게 남편이 사망한 사실을 알려주는데 그 후에 킹 부인이 보여준 뜻밖의 행동에 나는 전율했다. 복잡한 슬픔을 표현하는 그녀만의 방식은 우아하기까지 했다.

한 편,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들 중에서 <다시 찾아온 바빌론>만큼이나 유명한 단편소설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는 위의 세 편의 단편소설과는 조금 다른 결의 상실을 다룬다. 전자들이 사랑이나 젊음, 어떤 한 시절의 찬란함이라는 감정적인 요소를 상실한 것에 반해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의 등장인물들이 하루아침에 상실하게 되는 것은 초현실적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부(wealth)다. 피츠제럴드는 이 단편소설을 통해 부자의 경박함과 부도덕성, 미국인의 부에 대한 환상과 그 허망함을 다루는데 기존의 리얼리즘적 화법을 넘어 마치 시대를 초월하는 한 편의 판타지소설을 접하는 느낌이었다. 1920년대에 이런 분위기의 소설이 쓰여질 수 있었다는 것이 믿겨지기 힘들 정도로 스토리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피츠제럴드는 이 단편에 대해 ‘내가 재미있으려고 만들어낸 소설이다. 나는 완전한 호사스러움을 열망했고, 이 이야기는 그 열망을 채워보려는 시도였다.’라고 말하는데 그 시도는 가히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단편소설 <해외여행>은 내가 읽어본 중, 가장 낭만적이고 아련한 기운을 품은 피츠제럴드의 작품이었다. 단편<해외여행>은 이후 장편소설 <밤은 부드러워>로 발전되어 쓰여지기도 했다. 서로를 무척 사랑하는 젊은 미국인 부부가 등장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다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물 흐르듯 펼쳐진다. 1920년대에는 외국에서의 생활이 더 풍요롭다는 환상이 만연했지만 정작 피츠제럴드가 그의 작품 속에서 그려낸 미국인의 모습은 배타적인 유럽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고독한 존재, 그 자체였다. 이 단편소설은 유럽에서 추방자처럼 살았던 그와 젤다의 실제 경험을 다룬 이야기이기도 했다. 잔잔하면서도 세련된 문체의 <해외여행>을 읽노라면 피츠제럴드의 문체에는 그만의 독특한 리듬이 있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그것은 뛰어난 음악을 연상하게 하는 아름다운 리듬이다. 그 시절의 다른 작가들의 문체가 무겁고 진지할 때, 스콧 피츠제럴드의 문체는 간결하지만 결과 질감이 세심하게 살아숨쉰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에서는 어딘가 향이 좋은 고급술의 냄새가 난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천천히 조금씩 술에 취해가는 것만 같다. 혹은 술에 흠뻑 취해 까무룩 잠이 든 후 깨어나서 느끼는 취기의 여운같기도 하다. 그것은 아마도 소설의 주인공들이 미처 철이 들지 않은 소년과 소녀처럼, 혹은 그와 반대로 이글이글하게 타오르는 야심가들처럼, 각자의 꿈과 아름다움을 열망하고 추구하는 이상주의와 낭만,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피츠제럴드의 주인공들에게 환상과 꿈은 그들을 고통스럽고 비루한 삶에서 구원해주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만약 그들에게 이러한 환상과 꿈이 없었다면 그들이 살아가고 버텨내야 할 세상은 너무나 황량했을 것이다.

다행히 야망이 넘치던 젊은이들은 그들이 꿈꾸어왔던 일을 성취하고 인생이 누릴 수 있는 극치를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피츠제럴드의 인생, 그리고 그의 소설 속의 주요 무대는 1929년 대공황을 전후로 끼고 있는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미국이었기에 그 드라마틱한 롤러코스터와 같은 인생은 허구만이 아닌 현실에서도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과 소설 속 주인공들은 원하던 바를 이루고, 성공을 하고서는 손에 넣었던 것들을 끝내 상실하고 스스로도 훼손되어진다. 마치 그것이 인생의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처럼.

낭만주의는 실패하고 상처를 입고 그들은 자신이 꾸었던 꿈, 동경했던 아름다움에 대해 실망하고 환멸을 느낀다. 그러는 가운데 주인공들은 점차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현실적이고 체념하는 어른으로 변해간다. 이상주의의 소멸, 혹은 낭만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의 갈등 – 이것이 우리네 인생의 핵심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 핵심이란 말인가. 피츠제럴드의 이러한 주제의식은 자연스럽게 동시대의 독자들의 욕망과 불안을 반영했기에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이토록 생생한 작품들로 독자들을 매료할 수 있었던 것은, 소설을 통해서 그려낸 이상과 현실, 꿈과 환멸, 성공과 좌절 등은 스콧 피츠제럴드 그 자신이 실제로 살아낸 현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피츠제럴드는 문단에 등장하자마자 인기와 명성을 얻으며 화려한 성공을 거두며 최고의 인기작가로 자리잡는다. 더불어 사교계의 가장 인기있는 커플이 되는 데에는 그의 마성적인 아내, 젤다의 영향력이 컸다. 젤다는 얼굴이 눈에 띄게 미인인 것도 아니었지만 타고난 활력으로 주변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아내 젤다의 분에 넘치는 사치와 신경쇠약으로 인한 잦은 정신병원 입원으로 피츠제럴드 부부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에 이르고 만다.

정신병원 입원으로 인한 아내 젤다의 부재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글쓰기에도 뜻하지 않게 악영향을 끼쳤다. 스콧은 본질적으로 젤다라는 뜨거운 영감의 원천을 가까이에 필요로 했다. 그는 재료가 없으면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재료를 만들고, 스스로 연출해서, 그것을 실행한 후 소설로 쓰는 작가였다. 다시말해 자신이 체험한 것이나 목격한 것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타입의 작가였던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토대로 쓰는 것은 당시의 작가들에겐 자주 있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문장력도 좋고, 캐릭터 설정도 좋지만 기폭제가 되는 현실의 사건이 없으면 소설을 쓰지 못했던 스콧에게는 일상의 모험을 같이 일으켜줄 젤다가 절실히 필요했다. 스콧과 젤다라는 커플조합은 그런 의미에서 영혼의 파트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이 각자 몸에 지닌 열정의 온도는 일반상식범위를 넘어설 만큼 강렬했기 때문에 긴 시간에 걸쳐 균형을 잡고 서로를 지탱시키는 일은 불가능했다. 더불어 두 사람은 ‘생활의 파트너’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훨씬 많았다. 부부 중 그 어느 쪽도 인생을 건실하게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실무능력이 결정적으로 결여되어 있었고 서로의 결점을 어떻게든 채우려는 의식조차도 없었다. 의식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인내심이 치명적으로 부족했다. 말 그대로 스콧과 젤다 커플은 대책없이 갈 때까지 가며 불사르는 인생을 살아냈다.

가령 끝없는 이사는 피츠제럴드 부부에게 있어서 숙명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한 곳에 제대로 정착을 하지 못했다. 덕분에 피츠제럴드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집을 소유하는 일이 없었다. 항상 집을 빌려 살았고, 재산을 모으는 일도 없었다. 주거환경에 대해서도 재정상황에 대해서도 아무튼 ‘안정’을 얻을 수가 없는 인생이었다. 스콧 자신은 점차 알콜중독이 되어가고 젤다의 신경쇠약과 광기는 심해져갔다. 스콧은 외동딸 스코티의 양육이라는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고 만성적인 재정압박에 괴로워하면서도 소설을 계속 써나갔다. 하지만 당시의 비평가들은 스콧 피츠제럴드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여기는 것들을 다루지 않아서 그의 작품들이 쉽고 가볍기만 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스콧 자신도 죽기 직전까지도 ‘(당시에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어니스트 헤밍웨이야말로 현대문학의 거성이고 자신은 그에 비하면 테크닉만 익힌 문학적 창녀에 지나지 않았다’라며 패배주의적 경향을 내비추기도 했다. 그토록 자학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은, 1930년대 후반에는 <위대한 개츠비>가 일시적으로 절판이 되고 그의 한 해 인세수입은 고작 33달러였던 것에 비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젊은이들이 숭배를 한 몸에 받으며 전세계적으로 압도적인 명성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때는 1940년, 고작 44세의 젊은 나이로 그는 심장마비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일장춘몽같은, 드라마처럼 치열했던 한 천재작가의 인생이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만 것이다.

‘작품보다도 자신의 사생활이 더 화제가 되는 작가는 불행하다’라는 말이 있다. 파란만장한 사생활을 영위했다는 점에서 이 말은 스콧 피츠제럴드를 제대로 설명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의 인생이 결코 불행했다는 생각이 들지않는다. 행여 객관적으로 불행해보였다고 해도 그 모든 불행조차도 스콧에게는 작품의 연료가 되어줬을 것이고 작가란 모름지기 그 모든 것을 눌러담아 글로 빚어내서 표현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한, 행복하고 충족된 존재다. 지금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스콧 피츠제럴드다운’ 단편소설들을 읽게 될 우리들처럼.

글/임경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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