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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론]

나의 노후를 위한 당부

지난 삼여년 간 양가부모님 세 분의 장례를 치렀다. 정확히는 장례만 치룬 건 아니었다. 거슬러올라가 그 전 몇 년은 종합병원과 요양병원, 요양원과 응급실의 나날이었다. 마음 한켠이 늘 무겁고 우울하던 시기였다. 이제는 모든 것이 과거가 되어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느꼈던 막막함이라는 감정은 쉬이 기억에서 잊히질 않는다.

막막함은 노인간병과 돌봄에 관한 고민을 다른 사람들과 편하게 공유하기 힘든 분위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한국인에게는 뿌리깊은 효사상이 배여있기에 부모님은 어디까지나 ‘모셔야 하는’ 존재였다. 부모님을 돌보는 일은 가정 내에서 (주로 여자가) 조용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으니, 늙고 병든 부모님을 소위 ‘시설’에 보내는 자식은 곧바로 불효자로 낙인찍히기 마련이었다. 요양시설의 도움을 빌린 사실도 주변에는 알리지 않고 쉬쉬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가족구성원이 노인의 간병과 돌봄을 전적으로 도맡는 일이 점점 어려운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제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다. 지난 10월 2일의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한국은 2026년에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20%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되고, 2050년이 되면 전국민 3명 중 1명(39.8%)이 고령자가 된다고 한다. 최근 10년 사이 전국의 요양병원 숫자가 5배 넘게 급증한 사실도 이러한 추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죄책감이라는 감정에 짓눌려, 가장 절박하게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에 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터부시한다. 얼굴빛이 어두워보여 요새 무슨 고민이 있냐고 물으면 내 또래 중년들은 대개 ‘응, 부모님이 좀 편찮으셔’라고 작게 말하고는 말끝을 흐린다. 그런 반응을 보면 남의 일같지 않아 가슴이 철렁하다.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응급전화에 신경이 예민해져 깊이 잠들지 못했던 숱한 밤들과 발을 동동 굴려야만 했던 순간순간들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가령, 요양병원이라는 곳은 장소의 특성상 미리 예약을 해둘 수가 없는 시스템이다. 상황이 닥쳤을 때 그제서야 알아볼 수 밖에 없다. 여행지 호텔추천을 바라듯이 사람들에게 어디가 괜찮냐고 물어보기에도 난감한 사안이라 대개는 직접 ‘맨땅에 헤딩’으로 찾아본다. 우선 온라인검색으로 대상을 좁힌 다음, 하나하나 직접 발품을 팔아 보러가야만 한다. 막상 가보니 창문도 없는 방에 침대 사이 간격도 거의 없이 환자분들이 일렬로 누워있던 시체안치실같은 곳을 본 적도 있어서 하는 말이다. 병든 부모를 남의 손에 맡기는 자식의 죄의식을 묘하게 이용한다는 느낌을 받은 곳도 있었고 당장 지난 달 한 요양병원의 화재사건에서 보듯이 안전관리나 위생관리가 미흡해 보이는 곳도 있었다. 괜찮지 않을까 싶은 곳은 종종 빈 자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시설에 대기를 걸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부모님의 들쑥날쑥하는 병세에 따라 자식들이 긴장상태로 24시간 대기하는 수 밖엔 없었다.

적당한 요양시설을 알아보고 자리를 확보하는 일에 하도 고충을 겪다보니 어느날은 그만 울컥해서 그간 추려둔 요양병원 리스트를 개인SNS에 공유해버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닥쳤을 때 덜 고생하길 바랬다. 분명 누군가는 ‘부모님을 시설에 모시는 게 자랑이냐’며 비난할 거라 각오했다. 한데 왠걸, 그 글은 내가 올린 모든 게시물 중 가장 많은 ‘관심글’ 지정을 받은 글이 되었다. 나야말로 깜짝 놀랐지만 그만큼 다들 겉으로는 말못하면서 속으로는 전전긍긍하는 문제임을 짐작해볼 뿐이었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읽는 ‘부모님’세대의 독자분들이 느낄 서늘함과 서운함도 헤아려본다. 하지만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면, 현실을 직시하고 그간 터부시한 주제에 대해 공론화를 하고 싶다. 다양한 입장에서 의견을 보태야 보다 섬세한 대처를 해나갈 수 있고, 그래야만 비로소 환경이 개선되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가족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양질의 요양시설들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현재도 요양병원 등의 시설을 평가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나 관련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알지만 향후 급속도로 증가할 노령 인구나 요양시설을 고려한다면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신뢰가능한 시스템구축이 요구될 것이다. 연이어 상을 치르면서 유가족의 입장에 서서 장례절차를 이끌어주고 조언해주는 장례지도사의 역할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긴박하게 겪을 수 밖에 없는 가족의 의료,간병,돌봄 문제에 대해 차분히 정보를 제공하고 조언해주는 해당분야 전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한편, 한 사람의 요양보호사가 스무 명 가까이를 돌봐야 하는 열악한 근무환경이 시정되고, 돌봄노동의 처우를 개선시키는 일도, 노인돌봄이라는 중요한 화두가 사회의 양지로 나오게끔 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노후를 위한 당부이기도 하다.

글 / 임경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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