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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55,851

통화

조회 428 추천 0 2018.12.19 12:25:13

P 누나와 말장난을 하면서 자리에 누웠다. 전기장판을 켜두었지만 이부자리 부분 부분만 따뜻하다. 특히 등이 따뜻하고 발쪽이 그렇지 않다. 때문에 몸을 적당히 오므린다. 수화기 너머에선 손톱 깎는 소리가 대화에 함께 섞여 들린다.

 

- 누나 손톱 깎아?

- 응.

- 응, 소리가 들려서. 누나 여기 집 근처 지나가면 말해

- 왜? 너 거기 있어?

- 응, 나이트에서 일해. 입구에서 '주진모' 찾아

- 나 미성년자가 아니라서 써먹을 일 없겠다.

- 하하! 홍자성이 말하길, 사람은 모두 써먹을 때가 있다 그랬지

 

- 누나, 집이야? 머리는 감았어?

- 응. 작업실, 머리는 감았어

- 어때? 완전 말렸어?

- 아니, 그냥 아직 덜 말랐어. 왜?

- 아니, 그냥 상상하려고

- (웃음) 무슨 상상.

- 수화기 너머 누나는 손톱을 깎고 있는데.. 머리는 다 말렸는지 얼마나 말랐는지, 어떤 자세로 손톱을 깎고 있는지. 방은 따뜻한지 그래서 옷은 다 입고 있는지.. 이런 상상

 

- 하하, 다 컸네

- 난 이런 상상하는 거 참 좋아. 비록 수화기 너머이지만 이렇게 눈 감고 상상하면서 대화하면 엄청 가까이에 있는 기분이야, 바로 옆에

- 요녀석, 보고 싶어지네.

- 이제 택시타면 거기도 가깝네. 곧 놀러갈게.

 

한 살 터울의 P 누나는 햇수로 나랑 십년하고도 사년 째 더한 시간을 만나고 지낸다. 못된 내가 기쁠 때만 찾고, 힘들 때만 그를 찾아서 사실 얼굴을 마주보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은 서너 달에 한번쯤. 이제 서로 나이가 들어서인지 엉큼한 농담으로 약 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혼자 사는 나의 집. 하고도 가장 큰 방에 이렇게 혼자 들어앉아 있으면 종종 외로워진다. 하지만 그런 외로움이 나를 만들고 키웠다. 어릴 때에는 외로움이 참 싫었지만 이제는 외로움이 내 삶의 원동력쯤 된다. 누나가 나를 이렇게 씩씩하게 키웠다. 나는 사람에 욕심을 크게 두지 않는다. 외로움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부분 사람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 말이다.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았고 사람이 있어 외로웠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나쁜 버릇이 나오는 나를 발견한다.  "아, 더 이상은 이 사람과 가깝게 지내지 말아야지." 그 사람이 가까이 있는 나를 두고, 다른 사람에게 가위를 빌리면 서운하고, 그 사람과 한 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팀을 조금 더 신경 쓸 때면 못내 서운해진다. 나는 바보가 된다. 흐흐. 어려운 사람 마음. 아! 나는 또 그래서 생각한다. 어찌 이리 사람 마음을 쉽게 얻으려 하냐고. 사막에서 꽃을 피우는 마음으로 지내야 한다고.. 맞다, 사람의 마음을 하루아침에 얻으려 하는 것은 큰 욕심이다. 나는 아직 좀 더 외로워도 될 것 같다. 

 

 



몽이누나

2018.12.19 13:30:43

전화통화, 목소리, 덜마른 머리, 손톱, 상상..  흐흐. (요즘 단어수집중이라 이래요)

외로움의 원인은 사람에게 있는걸까요? 내자신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한테 기대하는 내 자신. 적고보니 말장난 같네요. 히힣. 혼자서도 외롭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 있네요. 누군가 옆에 왔을때 외로움을 채우려 그 사람을 취하지 않으려고요 :)

 

만만새

2018.12.19 15:11:37

엉큼과 응큼은 같은 말인가요?ㅎ며칠전에 누가 본인 성격 응큼하진 않대서.

domoto

2018.12.19 19:18:06

너 누구야 글이 왤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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