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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의 작은 복수.

조회 1048 추천 0 2017.08.13 00:09:16
어렸을 때 자다가도 이름 들으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던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촌 누나가 있었어요.
기억나기를 유치원 때 부모님 그림 그리라고 하면 빨리 엄마 아빠 누나 나 이렇게 대충 그리고 남은 시간에 사촌 누나 그림 그려서 선물해주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누나가 공부한다고 하면 발 밑에서 기다리다가 자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어요.

누나는 대학교 입학을 확정 짓고는 여행을 간다고 했어요.
매주말마다 보던 누나를 보내던 그 주는 못 보니까 떠나던 날부터 다시 돌아오는 날까지 매일 날을 세면서 기다렸고
돌아온 그 날 저는 17층 계단을 단숨에 뛰어 올라가 누나 품에 안겼죠.
사촌 누나는 웃으며 반겨줬고 평소처럼 나긋나긋하게 웃어줬어요.
하지만 거기까지.
사촌 누나는 뒤늦게 뚱한 표정으로 인사하는 친누나에게 인사하며 일본에서 사온 옷을 선물해줬어요.
그럼 나한테는 뭘 줄까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그간 내가 너무 예쁘게 굴어서 친누나한테 옷을 준다는 얘기를 하며
너는 남자니까 선물 없어도 괜찮지? 라는 개좆같은 소리를 했어요.
머리속에서 어이가 가출하며 7년의 세월에 배신당한 기분이 휘몰아치며 울음이 터져나왔어요.
행여 농담일까 싶었지만 당황하는 것이 역력한 것으로 보아 대충 이빨 까서 퉁치려고 했던게 진심이었음이 확실했어요.
외삼촌은 이내 분위기를 만회하려고 금일봉을 주섬 주섬 꺼내들었지만 내 기분이 바닥인데 그깟 초록색 종이 따위 눈에 들어오겠나요.

나무 서운했어요.
한떨기 히야신스같고 파스텔 색연필 담체화같던 누나에게 맘 속으로 작별을 고했고
머리 묶고 흰양말을 즐겨 신는 방배동 20대 여성 주민과 한남동 거주 한남(7세) 깔끔하게 마음을 정리했어요.

이제 와 생각하면 원죄는 외할머니에게 있어요.
그토록 아들 아들 노래를 부르던 외할머니는 당신 딸의 아들이던 저를 끔찍이도 아꼈지만
다른 딸의 딸들인 사촌 누나에게는 모질도록 냉담한 분이셨어요.
그 점 생각하면 어머니 이모 그리고 누나들에게 마음이 쓰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왜 내 마음이 다쳐야 하나요? 그것도 그토록 사랑하는 우리 사촌 누나에게서요.
사촌 누나에게는 같은 여자인 다른 자매들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는게 작은 저항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어린 나이의 당시에는 아프고 억울했어요.
서로 갈 길 가는 거죠 그렇게.

성인이 되었고 그 이후로 남자 조카 여자 조카가 생겼지만 그 날의 트라우마로 남자 조카에게만 더 잘해주며
제 의도적인 무관심에 약올라하는 여자조카를 보며 통쾌해하던 날도 있었으니 할 말은 없네요.
그 모든 날을 반성하며 초연한 무관심으로 일괄처리하고 있어요. 아주 편해요.

어제는 25년의 복수를 시마이하는 날이었어요.
미국에서 유학중인 사촌 누나의 딸은 어느새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었고
사촌 누나는 제가 나온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며 제게 진학 상담을 부탁해왔어요.
요청을 받고 오랜 시간 장고 끝에 바쁘니 여유가 생기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라며 극존칭으로 거절을 하고
영화관으로 달려가 화성 침공을 보고 왔어요.
남자 여자 행복하게 지내요.


소바기

2017.08.13 08:10:21

한살 차이나는 사촌오빠와 친했는데,
여섯살의 저는 그오빠가 하는짓마다
대단해보였는데,실상 오빠도 일곱살
꼬마였던걸 뿐인데요.아마도 우리도
스무살을 거쳤지만 사촌누나도 어린
스무살이었던거 뿐이죠.어쩜 누나는
돈이 없었을 수도 있구요.ㅎㅎㅎ

소바기

2017.08.13 08:11:44

장고끝에 바쁘니...했어도 연락드릴거죠?

고잉메리호

2017.08.13 11:27:27

맞아요 사람의 마음은 참 섬세하고 다치기 쉽죠
조금은 웃기긴해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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