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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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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드렁했던 거지. 제주에 가려니까. 언젠가 한 번 귀에 내려앉는 소리로 '경주'와 '제주'에는 하늘이 허락한 사람만 사는 거라데. 처음 듣는 소리였고, 지역주민의 자부심으로부터 나온 소린가 보다 그땐 무시했는데 진짜로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심드렁했던 거지. 오랜만에 만나는 아무개가 나보고 '니 제주도 언제 갈 낀데' 할 땐 낯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었지. 지지난해부터 제주도 제주도. 나는 제주도에 가서 살아 볼 생각이다. 내가 그렇게 노래를 불렀걸랑. 셰어하우스에서 한 달 살면서 뭐로 먹고살아야 하나 알량한 고민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한두 군데 가고 싶었던 셰어하우스에서 날 받아주지 않았다. 서울에서 기자 생활하다 제주에 눌러 앉음시롱 글에 기웃거리던 사람 셰어하우스였는데 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었거든. 작은방에다가 내가 무서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벌레만 나오는 곳. 그저 그런 상상으로 그 집을 아쉬워했다.


그러다 좀 더 진지해져서는 제주도 동쪽 끝에 있는 '우도'에 지역아동센터 일자리를 보고 갔었다.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였고, 해봤었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오래도록 같이 생활하고 활동할 수 있다는 것에 넘나 설렜다. 하려는 일은 버스기사였다. 아이들 데리러 가고 데리러 오고, 바깥활동이 있는 날에는 바깥까지 운전해서 데려다줘야 한다데. 어린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귀도 좀 알아먹는 중고딩들도 있는 곳이니까 세상 그렇게 편한 일이 또 있겠나 싶어서 얼른 지원했었다. 월 급여 130만 원은 문제 될 게 없어 보였다. 오전 10시부터 낮 4시까지 일한다는데 늦게 마쳐도 예닐곱 시일테고, 월화수목만 일한다 했다. 돈이 부족하면 금토일에 어디 게스트 하우스 알바를 해서 돈을 충당하고 꼬치구이나 팔면서 생활을 이어나가려 했지. 시간이 남는 날에는 그 뭐시냐, 오름에도 좀 오르고 아무튼 여기저기 많이 기웃거리려 했었지.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뭐하고 살 건지 내 나이 50에는 60에는 어떻게 될란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려 했던 그 때였지. 그냥 당장 앞에 눈에 보이는 행복에다가 손을 뻗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행복이 맞았던가? 그건 아마 신기루였는가.


사실 생각보다 우리 집 형편이 어려운 건 아니데. 엄마는 그런 내게 오천만 원을 주겠다 했다. 장가 가게 되면 어차피 형편 맞춰줄 돈이었다면서. 그땐 그게 막 억수로 고맙다기보다도 와 이제 나 진짜 제주도에서 살 수 있겠다. 그런 기대가 더 컸던 것 같다. 아빠의 반대에 부딪히고 그러는 찰나에 회사도 덜컥 입사되고 이래저래 흐지부지됐지. 여태 살아왔던 시간처럼 흐지부지. 마침 우도 지역아동센터에서 전화가 왔었다. 누구누구 씨. 여기 해바라기인데요. 사회복지사 자격은 없으시죠? 없으시면 곤란할 것 같아요. 어쩌죠.


어쩌긴요. 내 준비성과 무지에 우습기만 하고 겨우 이 정도 마음가짐으로 어디 가서 살려고. 지금 생각해보면 한발 빠진 게, 아니 한 발 허락되지 않은 게 나은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 뒤로 제주는 몇 번 더 다녀갔다. 혼자 몇 번 갈 때마다 올레길만 혼자 걷고 오고, 어쩔 땐 둘이 걷다가 밤이 되면 다시 혼자가 되거나 여럿이 되었다. 시인도 만나고 시인 흉내도 내고,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라. 그래서 아무거나 될 수 있었던 곳.


그런데 내가 제주에서 부리고 싶은 재주는 뭐였을까? 그땐 왜 제주가 아니면 안 된다 생각했을까. 그럼 지금은 잠잠해진 건가. 아무것도 모르겠네. 그나저나 오늘도 돈 벌었다. 아, 그런데 허균의 <성소부부고> 읽어봤는가? 거기 읽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지. <대저 이루어진 것만을 함께 즐거워하느라, 항상 눈앞의 일들에 얽매이고, 그냥 따라서 법이나 지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이란 항민이다. 항민이란 두렵지 않다. 모질게 빼앗겨서, 살이 벗겨지고 뼈골이 부서지며, 집안의 수입과 땅의 소출을 다 바쳐서, 한없는 요구에 제공하느라 시름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윗사람을 탓하는 사람들이란 원민이다. 원민도 결코 두렵지 않다. 자취를 푸줏간 속에 숨기고 몰래 딴 마음을 품고서, 천지간을 흘겨보다가 혹시 시대적인 변고라도 있다면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란 호민이다. 대저 호민이란 몹시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다.>


나는 항민일란가. 호민일란가. 그때 받은 오천만 원을 더해 명지에다가 집을 샀다. 1년 지난 지금 집값 사천만 원이 더 올랐다. 아직 모르겠다.

 



몽이누나

2018.03.07 09:41:17

믿고 읽는 달력님 글 :)
류이치 사카모토 노래 귀에 꽂고 있는데 글이랑 아주 찰떡이네요-!
우도 그 작은 섬에 지역아동센터가 있나보네요. 내가 봤던 우도풍경을 그려봤는데.. 가슴이 떨려오는 느낌이에요 ^^

십일월달력

2018.03.07 15:41:25

힣. 믿고 기대하는 몽이누나 댓글이네요!

우도 작은 섬에 아동센터 귀엽죠? 졸망졸망한 아이들이 제주바람 맞으면서 얼마나 잘 컸을까요. 아쉬운 기회로 남겨뒀어요!

노타이틀

2018.03.07 10:23:06

돈 벌어서 부럽습니다. ㅋㅋ 제주도 사는 건 저도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십일월달력

2018.03.07 15:41:59

오. 전 한풀 꺾였긴 한데. 구좌 조천 쪽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고(ing...) 했어요

몽이누나

2018.03.07 16:32:33

이런 필력은 어케 얻나요...........?

평소 독서랑 글쓰기 좋아하시나요.....?

저도 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십일월달력

2018.03.07 17:22:36

윽. 이런 공개된 곳에서 필력이라 해주시니 부끄럽고요.....

독서는 관심만 있어요.

그래도 역시 글 쓰는 데는 독서가 좋다 하니, 글쓰기가 좋아서 책 읽는 수준이에요.

 

그냥 솔직하게 억지로라도 뭐든 써보자.

하는 마음은 늘 가지고 길든 짧든 자주 글 써요. 

 

윽. 역시 부끄럽네요

몽이누나

2018.03.07 18:36:47

크흐 겸손하시기는 :)

글 자주 올려주세용 !! ㅎㅎ

권토중래

2018.03.07 17:27:33

저는 항민이네요. 역시 돈 버는 데에는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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