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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TALK
글 수 55,249

잠시 들려서는 긴 글.

조회 579 추천 0 2018.03.13 18:52:54

공항 입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여유롭게 마중을 나와있지요.
 
일곱시 이십분 도착인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착까지는 아직 한 시간 남짓 남았군요
설레이고 기분 좋은 순간 입니다.

 

빈 테이블에 앉아 서류가방을 던져놓고
챙겨온 텀블러를 만지작거리다 살짝 열어보고는

꽉 잠가서 안주머니 깊숙히 다시 밀어넣고
기다립니다.

 

평온한 시간이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


집.


요즘은, 다른 일정들은 모두 뒤로하고

주말이면 늘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오랫동안 계획해왔던 집을 짓고 있습니다.

 

2년 가까운 시간동안 틈틈이 목공수업을 받고, 디자인도 배우고
바람도 쐴겸 좋은 자리도 보러다니고


부지에 맞게 도면을 직접 설계하고 고치고 바꾸는 장고의 시간들을 지나다 보니.

올 1월이 돼서야 첫 삽을 뜨고
이제 막 시공 3개월차에 접어들고 있네요.


꾸준한 직장생활에 제테크도 괜찮았고
소모품이라 여겼던 것들에 대해 큰 소비성향을 가진건 아니어서
허투루 쓰지않고 꽤 잘 모아왔다 생각한 탓에  이정도 금액이면 됐지! 할만해!

자신감 백프로로 호기롭게 집 짓기를 시작했지만,

역시 사람 겸손해야 하나 봅니다...

 

전문가 분들의 조언도 많이 받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집을 올리고 있다는 만족스러움과는 별개로

설정한 금액보다 큰 돈이 꾸준히 들어가는게 불가항력 처럼 다가오니.
당혹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예비금을 합리적으로 써야하고, 예상치 못할 앞 날에 걱정이 드는것도 사실이지만
금융권에 손 벌리지 않겠다. 볏짚을 얹는 한이 있어도 내 능력 안에서 끝내겠다
이 다짐 하나 아직 지켜가고 있는걸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으리하게 큰 집은 아니어도
잘 정돈된 집. 함께 할 사람을 위해 선물같은 공간을 숨겨둔 집이어서
애착이 갑니다.


지금 어려움 좀 이겨내고 훗날 집이 완성되면

참 뿌듯하겠죠.

 

-

 

신선한 관계.

 

지난 하반기에.
 
지지하는 정당의 지역구 청년위원장 자리를 맡게 됐습니다.
위원장이라고해서 거창할 것은 하나 없고 

그저 속한 지역구의 봉사일정을 전파 한다거나
정당의 추진 방향을 미약하게 돕는 정도.


어찌됐든 그런 소소한 일을 하다가.

한 달에 한 번
국회에서 리더스클럽이라는 청년위원장 모임을 가지게 되는데

 

모임 초반
지역구별로 모여 앉아 참 많이도 치고 박고 서로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렇게 다시는 안 볼 사이 처럼 날카롭더니

 

미운정도 정이라고
이제는 서로서로 연락도 자주하고 일부는 친구가 돼서
연애 얘기, 결혼 얘기, 직장상사 얘기.

그냥 친구들과 하는 그런 시시콜콜 얘기들을 많이 나눕니다.
'전에 우리 왜 그랬던거야? 다정한 말투 어색해 왜이래' 툭툭치며 농담도 하고.
꽤 신선한 인연 입니다.


시기마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나 방향을 쫓아 서로 다른 색깔을 잠시 가지기도 하지만
그 시기가 또 잠깐 벗어나면 너무나 평범한.

함께가 되는거 같습니다.

 

단,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강요하는 무례함을 범하지 않겠다는 전제 하에서겠죠.

 

-


연인과의 이야기.

 

말머리를 달아놓고 메시지가 와서 시간을 보니
아차.

곧 비행기 도착시간 입니다..
얼른 게이트로 가봐야 겠습니다.


아주 예전에 블로그에서 우연히 보고
마음속에 명확하고 충실하게 콕 박혀서는
수년 째 항상 휴대폰에 저장해서 들춰보는 글이 있습니다.

 

내가 더 온전한 사람이 되기위해 참 많이도 읽었던 글.

 

남겨두고 갑니다.
오늘 저녁을 맛있게 먹을 예정입니다.


계신 분들도 맛있는 저녁 식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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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시작하면 한 여자의 취향과 지식, 그리고 많은 것이 함께 온다.
그녀가 좋아하는 식당과 먹어본 적 없는 이국적인 요리. 처음듣는 유럽의 어느 여가수나 선댄스의 영화. 그런걸 나는 알게된다. 그녀는 달리기 거리를 재 주는 새로 나온 앱이나 히키코모리 고고생에 관한 만화책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녀는 화분을 기를지도 모르고, 간단한 요리를 뚝딱 만들어 먹는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았거나 혹은 그녀의 아버지 때문에 의외로 송어를 낚는 법을 알고 있을수도 있다.
대학때 롯데리아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까닭에 프렌치후라이를 어떻게 튀기는지 알고 있을수도 있다.

 

그녀는 가족이 있다. 그녀의 직장에, 학교에는 내가 모르는 동료와 친구들이 있다.
나라면 만날 수 없었을, 혹은 애초 서로 관심이 없었을 사람들.
나는 그들의 근황과 인상, 이상한 점을 건너서 전해듣거나, 이따금은 어색하나마 유쾌한 식사자리에서 만나게 되기도 한다. 나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엿보게 된다.

 

그녀는 아픈 데가 있을수도 있다. 재정적으로 문제가 있을수도 있다. 특정한 부분에 콤플렉스가 있을수도 있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부모님과 갈등을 겪고 있을수도 있다. 그건 내가 잘 모르는 형태의 고통이다. 그러나 그건 분명 심각한 방식으로 사람을 위협한다.

 

그녀의 믿음 속에서 삶이란 그냥 잠시 지속되었다가 사라지는 반딧불의 빛 같은 것일 수도, 혹은 신의 시험이자 선물일 수도 있다.
혹은 그런 고민을 할 여유가 없는것이 삶 자체라고, 그녀는 피로에 지쳐 있을 수도 있다.

 

요컨대 한 여자는 한 남자에게 세상의 새로운 절반을 가져온다. 한 사람의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편협하기 때문에 세상의 아주 일부분 밖에는 볼 수 없다.
인간은 두 가지 종교적 신념을 동시에 믿거나, 일곱 가지 장르의 음악에 동시에 매혹될 수 없는 것이다.

 

친구와 동료도 세상의 다른 조각들을 건네주지만, 연인과 배우자가 가져오는건 온전한 세계의 반쪽에 가깝다.
그건 너무 커다랗고 완결되어 있어서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녀가 가져오는 세상 때문에 나는 조금 더 다양하고 조금 덜 편협한 인간이 된다.

 

실연은 그래서 그 세상 하나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연인이 사라진 마음의 풍경은 그래서 을씨년스럽지만 그래도 그 밀물이 남기고간 거대한 빈공간에는 조개껍질 같은 흔적들이 남는다. 나는 혼자 그 식당을 다시 찾아가보기도 하고, 선댄스의 감독이 마침내 헐리웃에서 장편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도 한다.
그런 것을 이따금 발견하고 주워 들여다보는 것은 다분히 실없지만, 아름다운 짓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그러한 실연이 없는 관계.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면 그 모든 절반의 세계는 점차 단단히 나의 세계로 스며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건 굉장히 이상하고 기묘한 일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세계의 리스트에는 그녀가 가져온 좋은것과 문제점 모두가 포함된다.
그건 혜택과 책임으로 복잡하게 얽힌 대차대조표라서 어차피 득실을 따지기가 어렵다.

 

세월이 감에 따라 그녀가 최초에 나에게 가져왔던 섬세한 풍경들의 윤곽, 디테일한 소품들은 생활이라는 것에 차차 혹독히 침식되겠지만, 그 기본적인 구성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여전히 나와 몹시 다르고 다양해서 이따금 경이로울 것이다.

 

한 사람이 오는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오는 것,이라는 말을 광고판에서 본 적이 있다.
왜 아침에 그 문구가 생각났을까. 아무튼 사람을, 연일을 곁에 두기로 하는 것은 그래서, 무척이나 거대한 결심이다.

 


1박2일 유호진 pd의 글.

 



몽이누나

2018.03.13 19:35:02

글을 읽는데 왜인지 눈물이 고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행복행복해

2018.03.13 22:38:22

좋은 글 같이 나눠주셔서 감사해요..가슴을 떨리게 하는 글이네요.. 5년님의 소중한 연인을 기다리는 설렘과 기분 좋은 분위기가 느껴져요:)

다솜

2018.03.14 16:36:08

제일 마지막 글 너무 와닿습니다. 실없지만 아름다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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