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골아픈 작업 중 러패를 페이스 메이커로 활용할 듯 하네요..
이달 말에 강제 종료!니깐 이 시기를 견뎌 보겠다.
참을성의 작동 기제는 저마다 다르겠죠.
나는 이 상황을 왜 참는가.
바닥엔 미안함이 깔려 있는 것 같고.
늘 구멍을 채우는 식으로 '함께'의 상황에서 활동해 왔기에.
이번에 이 구멍을 채우고, 미안함도 비로소 버리고 홀가분해지리라.
작년 초에 고립감을 크게 느꼈었어요.
대의랄지 함께랄지..
내 활동 자아의 천성은 작은 성취도 유의미하다는 소박함과, 한번 제안해서 아니라면 아닌 거지 재차 무리하게 설득할 필요 있나 하는 무심함이 있는데요.
이게 어떻게 보면 내 코어인데 이게 자꾸 공격당하고 의심을 요구받아서..
남의 장단에 맞춰. 혹은 업무적 포지션에 맞춰. 애써 설득하다가 다양한 벽을 느꼈었고
이후에 몇몇 사건을 계기로 칩거와 장기외박을 오가며 관계자들과 거리를 두는 시기를 꽤 길게 가졌어요.
(그 와중에도 그걸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자신의 걱정을 덜고자 혹은 요구와 비난과 충고를 던지고자.)
겨우 회복한 지 불과 보름?
지금 기록 작업이 개개인의 상처를 들쑤셔서 사람들이 폭염에 감정적으로 덧난 것 같아요.
다시 업무적 고립의 스멜이..
다짐이 필요합니다.
'나는 프로마감러"였"으니까 이 엿같은 시기의 엿같음에 최대한 휘둘리지 말고 시기가 되면 강제종료하리라.
기대수준을 낮추리라.'
암튼 심란한 와중에 혼밥 먹으러 가다가 동네 수다친구 어르신을 간만에 만나
다 쏟아내니 좀 속이 풀리데요.
진짜 반론 없이 귀기울여 주시고 깔깔 웃어 주시고 심지어 다 기억해 주심. 최고의 경청러.
지금은 속 시끄러우니까 못하지만
나중에 으르신이 되면 경청러가 되겠습니다.
좋은 경청은 치유력이 있다. 믿슙니다.
할머니 힐러, 멋지지 않나요.
뭐 말이 사람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니까
꼭 좋기만 하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