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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TALK
글 수 55,949

 

 

 

임대료 문제로 지금은 그 공간이 사라져 버린.

부산에 조그마한 극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공간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주말에 거길 찾아도 대여섯 명 남짓한 사람들뿐이어서 고즈넉한 그게 좋았거든요.

손님이 많아야 공간이 오래갔을 텐데 그땐 사람들이 여길 몰라서 이만큼만 찾아오면 좋겠다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사라져 버린 지금에 와서 그 생각이 조금 송구스러워집니다.

거기 가판대에는 음료나 쿠키 같은 것들을 판매했습니다.

저는 초코 쿠키를 좋아했습니다.

알알이 박혀 있는 초코가 이빨에서 사르르 녹는 그 느낌을 암전인 상태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그것을 좋아했습니다.

늘 영화가 시작도 전에 항상 그 쿠키를 다 먹어 치워 버릴 만큼요.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영화들을 꽤 많이 봤습니다.

어느 수녀님의 일생에 관한 것. 노근리 학살에 관한 다큐멘터리.

어떤 영화는 두 시간 러닝타임 내내 일본의 눈밭을 보여준 일뿐이라서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 딱 한 번 정사 장면도 나왔습니다.

사방이 눈으로 덮인 하얀 산에 있는 외딴 집에 화로만 켜두고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몹쓸만큼 야했지요. 세상에 오 이런.

서너 명의 친구에게 각각 그 공간을 소개해줬는데 하나같이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좋아하는 반응은 늘 비슷했습니다.

어쩌면 좋아하는 것도 서로 닮았으니 이렇게 친구로 남아 있는 거겠죠.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한 여름의 판타지아>입니다.

일본의 외딴 소도시에 여행을 간 어느 한국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여자는 어느 일본 남자를 그곳에서 알게 되고 둘은 서로 천천히 마음이 이끌리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써놓고 보니 별것 없는 내용에 나는 참 쉽게도 설렜습니다.

지나고 보면 여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만남-이별. 이렇게 두 단어로 끝나는 그 과정에 참 많은 감정들이 숨어 있는 것을 알았네요.

당연하게도 영화 속 두 주인공도 이별하게 됩니다.

남자의 손바닥에 여자는 무엇인가를 적어 주고, 짧은 키스를 하고 둘은 헤어집니다.

세상 스윗하여라.

영화가 끝나고 암막에 빛이 들어오면 또 나는 현실입니다.

일본에서 막 귀국한 사람처럼 게슴츠레하고 있던 눈에 힘을 줍니다.

기지개를 펴고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영화가 가져다주는 가장 아쉬운 순간.

나는 그 공간에서 그런 소소한 것들을 느끼고 사랑했습니다.

 

운전하며 늘상 지나치는 거리에, 오늘은 온통 봄이 한가득이라서 내가 사랑했던 공간을 떠올려 봤습니다.

몹시 사랑했던 공간은 그렇게 짧게 나를 설레게 했네요.

하물며

 

 

 

 

 



resolc

2019.03.29 16:23:35

아 저도 예전에 인터넷 보다가 부산에 극장이 하나 없어져서 아쉽다는 글을 보았는데요 오늘 또 글쓴이님 덕에 상기했네요. 저도 이전에 한여름의 판타지아 재밌게 봤어요. 그 영화 포스터가 당시에 굉장히 이쁘고 파스텔 톤으로 잘 나와서 에코백이 되게 잘 팔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울 극장에서 봤었는데 그 때 포스터를 나눠줬었어요. 또 누군가랑 같이 봤고 그 사람이 그 영화 보고 나와서 자기도 담배를 한대 펴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 장면만 어렴풋이 기억나고 누구랑 봤는지 잘 기억이 안나네요;; 요새 자주 이러는데 답답하군요; 아무튼 그 이후에 친한 친구가 일본을 놀러가자는 말이 나와서 그 영화 배경이 되는 그 동네도 알아봤었는데요 거긴 정말 시골 마을이고 숙박도 찾기 힘들고 볼 것도 없고 정말 그냥 마을이다 라는 정보를 들어서 일본의 다른지역으로 놀러 갔었습니다. 

 뭐.. 영화에 대한 추억이 좀 있어서 뭐라뭐라 해봤네요 ㅎㅎ 아래 지역은 이미 봄이 많이 왔겠습니다. 서울은 이제야 벚꽃이 몽우리를 맺었어요 곧 개화 시작하면 또 봄 난리가 나겠지요 최근에 이별을 해서 그런지 글 마지막에 하물며 뒤에 나올 글들이 꽤 궁금합니다ㅎㅎ 아무튼 좋은 주말과 봄이 되시길 바랄게요~

십일월달력

2019.03.31 23:31:40

저도 영화에 나온 그 일본 작은 마을에 꼭 한 번 가고싶다 생각했어요. 감말랭이나 말랑말랑 씹으면서 건들거리다 영화 속 남주처럼 우연찮게.. ㅎㅎ 여배우 이름이 ‘김새벽’인가 그럴거예요. 지금 마침 새벽이 가까워지는 시간이라 그런지 영화 속 장면들이 더 달콤하게 떠오르네요. 주말 마무리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uns

2019.03.30 19:17:09

공간은 의미가 부여되어서 특별해지는것 같아요.한가지보단여러가지가 혼재되어서 느껴지는,회사가 구로에 있었는데,새벽풍경과 음식점 향기등으로 그립네요.

십일월달력

2019.03.31 23:39:44

이번에 친구가 구로쪽으로 집을 옮긴다 하던데, 제가 잠깐씩 지나다니며 본 구로의 일면은 전자상가 거리(?)의 낙후된 이미지만 생각이 나서 지레 걱정하고 있는중이예요.. 새벽풍경과 음식점 향기가 있는 구로는 어떤가 잠깐 상상하게 되네요. 특별한 공간은 말 그대로 무료한 일상을 특별하게 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생각거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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