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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TALK
글 수 55,828

 

어제는 창원까지 가서 술을 마셨다. 회사와는 좀 떨어진 우리 연구소에서 창원까지는 40 km 남짓한 거리. 오래된 내 중고차에서는 CD플레이어만을 이용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블루투스는 커녕 AUX조차 없다. 하지만 나는 내 차가 딱, 나에게 알맞은 듯 하여 좋다. 나같이 없는 놈에게 이보다 더 좋은 차는 있어 보이기만 할 것이고, 이것보다 더 좋지 않은 차라면 약간의 머쓱함을 가지고 있어야 할 테니까 지금이 딱 적당하다.

 

"어때요? 지금 세상에 CD플레이어라니.. 꽤 클래식하죠?"

옆자리에 앉은 박 사원에게 물었다. ". 그러네요." 넌지시 묻는 질문에 그녀가 대답해준다.

 

- 이 노래 <해줄 수 없는 일> 맞죠?

- .

- 박효신이 부르니까 더 좋네. 이거 원래 거미 노래 아니에요?

- 헐! 박효신 1집인데요.

- 허얼.

- 박 사원님. 94년생이시죠?

- .

- 그 나이면 이 노래 모르는 나이인가?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하하.

 

따위의 이야기를 나누다 고속도로를 지나, 창원에 다다른다. 나는 이 곳 근처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중고딩 시절 때 이곳은 지금만큼 발전하지 못한, 벼논밭이 더 흔해빠진 곳이었다. 그 시절.. 그 넓은 논밭위에 아무렇게나 뿌려둔 추억들이 많아서 이 근처에 오면 추억팔이 하기 딱 좋다. 많이 뿌린 추억만큼, 딱 그만큼의 추억들을 이렇게나 수확한다.

 

- 그런데 무슨 회식을 이곳까지 와서 한데요?

- 부장님 댁이 여기거든요.

- 아!

 

부산 사는 사람이 아홉인데, 창원에서 회식을 하는 이유. 나부터 언뜻 이해될 듯 이해되지 않는 그것. 나 그래도 CD플레이어 따위로도 만족하는 사람이니.. 더 먼 곳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라고 마음을 늘 고쳐먹는다. 또 아니면 어쩔라구.

 

- 박 사원님. 저번 보니 술 꽤 잘 하던데요.

- 그 정도는 다들 마시는 거 아니에요?

- 햐, 전 이제 한 병도 힘들어요.

 

같은 팀원인 박 사원은 입사와 동시에 소문난 술꾼이다. 그래서인지 부장들과, 여럿 직급이 높은 분들께 인기가 많다. 박 사원을 보고 생각컨대 술 좋아하는 사람은.. 어쩐지 몸매관리에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것 같다. 내 주변에 또 누가 술을 잘 마시더라. 까지 생각이 미친 결과, 그들 역시 몸매 관리에 꽤 노력중인 것 같다.

 

옛날 나의 주 무대였던 창원 어디 번화가에서 15년이 흐른 지금, 궁둥이를 붙여 그 시기를 생각해보니 흘러간 시간들이 참 멋쩍다. 같이 엉덩이를 붙였다 띤 친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결혼을 하고, 이혼을 했고. 재혼은 아직 아무도 첫 스타트를 끊지 않았다. 재혼이라니. 맙소사! 그건 정말 아저씨 아줌마 같잖아.

 

회식자리에 나는 뻘쭘하여, 잘 노는 박 사원 옆에 앉아 부지런히 술을 마셨다. 술이 술을 마시는 이 기분. 가끔은 이렇게 시정잡배가 된 듯 술을 마시고, 큰 소리로 떠들어 다른 테이블의 눈치를 받는 일 또한 나쁘지 않다.

 

- 헐. 대리. 너무 많이 드시는 것 아니에요?

- 그러게요. 저 죽겠는데요.

- 집에는 어떻게 가세요?

- 저 좀 있다 친구가 데리러 온답니다. 제가 예전에 이 곳 근처 살아서 이래봬도 친구가 좀 있거든요.

- 헐. 전 나중에 대리님, 대리 부르면 꼽사리 껴서 갈려고 했는데요!

- 헐. 그건 제가 해줄 수 없는 일이네요.

 

자리가 파하기도 전에 나는 일어나, 친구 집에 수박 한통 사들어 들어간다. '제수야 잘 있었나.' 친구의 아내는 내가 소개시켜준 내 오랜 아는 여동생. 둘 중 한명이 조금 더 아까울 것도 없어 잘 만나 결혼에 골인하여 잘 사니. 이 부부 만나면 기분이 좋다. 그럼 어디 시정잡배 노릇은 끝났으니, 제수의 눈치 안주를 올린 술상이나 한 번 받아보자.

 

친구야, 근데 내 진짜 오늘 억수로 많이 묵었데이. 하면서

 



몽이누나

2019.05.24 15:57:26

단편에세이집한권내주세요

토끼마우스

2019.05.26 01:03:09

찬성이요!!

Hardboiled

2019.05.25 18:49:03

하악..

빠이

2019.05.29 16:06:42

문득 글을읽는데 반가워졌어욤...

창원..^^ 저창원사람이예요..

그냥 반가웠네욤.. 맛난거 드시고 잘가셨나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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