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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교보문고에 들렀다. 주차장에 낑낑대며 주차를 하고, 교보문고에 들어간다. 가서 생산관리와 물류쪽 책을 보다가 문득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닝을 보고 난 뒤, 헛간을 태우다를 읽지 않았기에 찜찜한 마음을 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책의 위치를 잘 찾지 못해, 서점 직원의 도움을 받아 책을 들어서 본다. 1대 100 촬영때 조승연 작가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한국사람들은 책을 사자마자 책 페이지 수를 확인 합니다.' 이 기억이 난 것은 사실 페이지 수를 확인 한 뒤였다. 한 30페이지도 되지 않는 아주 짤막한 단편이였다. 책을 읽어 내려 간다.
버닝에서는 종수가 헛간을 태우다 라는 것을 벤이 해미를 죽인 것으로 해석해서 벤을 죽였다. 음.. 그럴 수도 있겠다. 그의 말 속에는 뭔가 중의적인 표현이 가득했고 정황상으로도 맞다. 하지만 벤이 해미를 죽인 것이 아니라면? 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소설에서는 그녀가 사라져도 주인공은 종수처럼 바쁘게 찾아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단편 소설이 주는 상상력에서 기인한 이창동 감독의 생각으로 보면 되려나.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은 실재의 차이이다. 헛간을 태우다에서 주인공은 불에 타 없어지는 헛간만을 생각하지만, 버닝의 종수는 실재를 바라본다. 어떻게 보면 종수가 하루키의 실체에 더 가깝지 않냐는 생각이 든다. '몸으로 느끼고 글로 쓴다.'는 하루키의 말처럼 하루키의 책에 유독 섹스라는 원초적 운동이 자주 등장 하는 것도 사실이고...사실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동물의 번식 행위로만 생각 한다면 좋게 말하면 쿨내음이고, 꼬아서 말하면 인간 존재에 대한 허무함이려나..
헛간이라는 것이 과거를 태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자신의 지우고 싶은 과거를 2달에 한번씩 태운다. 그러면 과거를 왜 태우는가 라는 질문도 나온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어서가 아닐까? 라고 답해본다. 인셉션에서 '평생을 후회로 가득 찬 채 인생을 보낼 것인가 '라는 사이토의 말이 떠오른다. 평생을 후회로 가득 채운 채 인생을 보낼 것인가.. 나는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 살았다. 언제 갚을까 막막했던 학자금을 다 갚고, 20살 이후로 첫 등록금 이후는 내가 다 부담했다. 솔직히 힘들었던 타지에서의 대학생활을 지내면서도 후회라는 것을 하지 않기위해 살았다. 고등학교때 abc도 잘 몰랐던 내가 영어로 대화도 하고, 이메일도 간단하게 쓰고... 이럴 정도로 열심히 했다. 하지만.. 내가 선택의 갈림길에서 보냈던 시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번 더 잡았어야 될 2010년의 겨울과 내가 힘들어 떠나보낸 2014년의 겨울.. 이런 후회가 쌓이고 나니 후회가 든다. 후회속에 살고 싶지는 않지만, 왜 그때 한번 더 생각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헛간을 태우다에서의 주인공은 이런 기억들을 지우고자 두달에 한번씩 일탈을 하는건 아닐까? .. 흠.. 잘 모르겠다.
ps. 어쩌면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처럼 뻔뻔해질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조금 덜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았더라면 하는..우연의 연속이자, 시간이 흐를수록 세부적인 사항은 끊임없이 상실되고 큰 덩어리만 남는 우리 인생의 기억처럼 그냥 아무 생각없이 뻔뻔했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