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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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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칠전 먹다 남은 카레를 데운다. 맑은 날씨. 술을 잔뜩 마신 다음날, 첫 끼를 카레로 시작하는 것이 옳은 선택은 경험상 아닌 것을 알지만 계속 데우기로 한다. 맑은 날씨. 부엌에는 큰 창문이 하나 있고, 그 창문 너머로는 우리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위치한 고등학교 운동장이 훤히 다 보인다. 축구를 하는 아이들 모습. 농구를 하는 아이들 모습. 그걸 보는 나머지 아이들. 그래, 체육시간인가 보다. 쉰내 풀풀-나는 체육복 따위를 빌려 입던 기억이 난다. 그걸 얼른 갈아입고 도둑괭이처럼 여자아이들을 훔쳐보던 기억의 편린. 그러고도 꽤 순수했다고만 말하고 싶은 나의 그 시절들,.

 

카레를 올린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창가에 턱을 괴고서는 물끄러미 그걸 본다. 나 저 나이 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지냈을까. 너희들 그 나이 때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밥 차리다 말고 그런 생각을 쓸데없이 한다.

 

최근 몇 번, 내가 운동하는데 여동생이 함께 따라나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는 너. 아빠의 방 청소 좀 하라는 잔소리도 이제는 포기하게끔 만들고, 몇 번의 날은 새벽이 훌쩍 지나 늦게 들어와 폰만 만지작거리다가 씻지도 않고 잠에 든다. 그럴 수도 있지, 오빠로서 딱히 힐난하고 싶진 않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는 종종 궁금해진다. 운동한답시고 따라나서서는 삼십분도 제대로 뛰지 못하는 체력, 그제야 조금은 동생이 못마땅해지는 나란 오빠.

 

갑자기 왜 따라 오냐. 물으니까 남자친구가 생겼단다. 그래서 살 빼려고 이러는 거냐니까 그렇단다. 그래, 그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뽀뽀는 했냐? 했단다. 뭐지, 진도 엄청 빠르네. 생각하는 찰나에 볼 뽀뽀란다. 아빠도 아니면서 조금의 안도를 한다. 야, 오빠는 볼 뽀뽀도 부끄러워서는, 한 달 만에 하고 도망갔다. 옛이야기를 말해주려다가 꼰대 같아 관뒀다. 사랑이라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그것보다는 궁금증이 더 앞섰던, 그래서 그다지 미친 듯이 아름답기 마는 하지 않았던 나의 첫 섹스를 떠올리며 너의 그것은 꽤 아름답기를, 그래서 후회를 남기기보다는 그러기를 바란다.(물론 후회가 아주 없진 않을 것이다.). 미안, 아무래도 이건 오바지?? 그렇지만 나도 네 나이 때, 너같이 조그만 아이를 좋아했었으니까. 그땐 그랬다.

 

나는 축구와 농구를 그다지 즐겨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몇몇 마음 맞는 친구와 어울려 쓸데없이 간접흡연을 하거나 도박을 좋아해서는, 아니. 도박을 좋아한다기보다 그에 상응하는 짜릿함을, 긴장을, 스릴을 좋아하는 남자아이여서 못된 짓은 꽤 하고 다녔다. 공부가 그렇진 않잖니. 공부는 정말 너무나도 지겨웠다. 그래,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곤 그 시절들을 보냈나 보다. 창문으로 넘어 들어오는 아이들의 고함소리. 그 백색소음에 옛 생각을 하면서 카레를 입에 떠 넣는다.

 



뜬뜬우왕

2018.07.25 11:06:35

카레의 매콤한 맛과 아이들의 뛰다 넘어지는 모습은 왠지 닮았네요. 둘다 동적인 느낌.

초등학교에서 일하는데 깁스한 애들이 엄청 많더라구요. 뛰다가 넘어지는게 일상인 아이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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