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FILE
  • COLUMNS
  • FREETALK
  • BOOKS
  • SCHOOL
  • 회원가입
  • 아이디&패스워드 찾기
FREETALK
글 수 55,740

며 칠전 먹다 남은 카레를 데운다. 맑은 날씨. 술을 잔뜩 마신 다음날, 첫 끼를 카레로 시작하는 것이 옳은 선택은 경험상 아닌 것을 알지만 계속 데우기로 한다. 맑은 날씨. 부엌에는 큰 창문이 하나 있고, 그 창문 너머로는 우리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위치한 고등학교 운동장이 훤히 다 보인다. 축구를 하는 아이들 모습. 농구를 하는 아이들 모습. 그걸 보는 나머지 아이들. 그래, 체육시간인가 보다. 쉰내 풀풀-나는 체육복 따위를 빌려 입던 기억이 난다. 그걸 얼른 갈아입고 도둑괭이처럼 여자아이들을 훔쳐보던 기억의 편린. 그러고도 꽤 순수했다고만 말하고 싶은 나의 그 시절들,.

 

카레를 올린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창가에 턱을 괴고서는 물끄러미 그걸 본다. 나 저 나이 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지냈을까. 너희들 그 나이 때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밥 차리다 말고 그런 생각을 쓸데없이 한다.

 

최근 몇 번, 내가 운동하는데 여동생이 함께 따라나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는 너. 아빠의 방 청소 좀 하라는 잔소리도 이제는 포기하게끔 만들고, 몇 번의 날은 새벽이 훌쩍 지나 늦게 들어와 폰만 만지작거리다가 씻지도 않고 잠에 든다. 그럴 수도 있지, 오빠로서 딱히 힐난하고 싶진 않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는 종종 궁금해진다. 운동한답시고 따라나서서는 삼십분도 제대로 뛰지 못하는 체력, 그제야 조금은 동생이 못마땅해지는 나란 오빠.

 

갑자기 왜 따라 오냐. 물으니까 남자친구가 생겼단다. 그래서 살 빼려고 이러는 거냐니까 그렇단다. 그래, 그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뽀뽀는 했냐? 했단다. 뭐지, 진도 엄청 빠르네. 생각하는 찰나에 볼 뽀뽀란다. 아빠도 아니면서 조금의 안도를 한다. 야, 오빠는 볼 뽀뽀도 부끄러워서는, 한 달 만에 하고 도망갔다. 옛이야기를 말해주려다가 꼰대 같아 관뒀다. 사랑이라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그것보다는 궁금증이 더 앞섰던, 그래서 그다지 미친 듯이 아름답기 마는 하지 않았던 나의 첫 섹스를 떠올리며 너의 그것은 꽤 아름답기를, 그래서 후회를 남기기보다는 그러기를 바란다.(물론 후회가 아주 없진 않을 것이다.). 미안, 아무래도 이건 오바지?? 그렇지만 나도 네 나이 때, 너같이 조그만 아이를 좋아했었으니까. 그땐 그랬다.

 

나는 축구와 농구를 그다지 즐겨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몇몇 마음 맞는 친구와 어울려 쓸데없이 간접흡연을 하거나 도박을 좋아해서는, 아니. 도박을 좋아한다기보다 그에 상응하는 짜릿함을, 긴장을, 스릴을 좋아하는 남자아이여서 못된 짓은 꽤 하고 다녔다. 공부가 그렇진 않잖니. 공부는 정말 너무나도 지겨웠다. 그래,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곤 그 시절들을 보냈나 보다. 창문으로 넘어 들어오는 아이들의 고함소리. 그 백색소음에 옛 생각을 하면서 카레를 입에 떠 넣는다.

 



뜬뜬우왕

2018.07.25 11:06:35

카레의 매콤한 맛과 아이들의 뛰다 넘어지는 모습은 왠지 닮았네요. 둘다 동적인 느낌.

초등학교에서 일하는데 깁스한 애들이 엄청 많더라구요. 뛰다가 넘어지는게 일상인 아이들...ㅎㅎ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신작 산문집 [다정한 구원]이 출간되었습니다. file 캣우먼 2019-05-30 291  
공지 <캣우먼>'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업로... [4] 캣우먼 2019-03-18 869  
공지 소설집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 출간되었어요! file [2] 캣우먼 2018-09-04 2190  
공지 에세이 <교토에 다녀왔습니다.>가 출간되었습니다! file [1] 캣우먼 2017-08-31 14616 1
공지 에세이<자유로울 것>이 출간되었습니다- file [7] 캣우먼 2017-01-23 48127 3
공지 여행서 <임경선의 도쿄>가 출간되었습니다!! file [12] 캣우먼 2016-04-07 85969 5
공지 장편소설 <나의 남자>가 3월 1일에 출간되었습니다. file [12] 캣우먼 2016-02-29 90814 4
공지 에세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이 10월20일에 출간되었습니다 : ) file [5] 캣우먼 2015-10-19 108858 2
공지 산문 [태도에 관하여]가 3월30일 출간됩니다. file [15] 캣우먼 2015-03-27 130072 2
공지 장편소설 [기억해줘]가 출간되었습니다 : ) file [11] 캣우먼 2014-10-14 221802 2
공지 자주 묻는 질문 / 문의하기 관리자 2013-08-14 357519 2
공지 산문집 [나라는 여자]가 나왔습니다. file [40] 캣우먼 2013-04-16 384003 10
55495 이 남자는 제가 부담스러운걸까요? [8] 비누향기1 2019-02-28 830  
55494 어장관리때문에 하늘이 무너지는거같아요 [4] 콩재 2019-02-28 594  
55493 친구가 부러웠던 개 [1] 로즈마미 2019-02-28 216  
55492 저같은 분 계세요? [5] Rooibos0 2019-02-28 451  
55491 되게 오랜만이라 아이디와 비번도 까먹었습니다 [1] 다솜 2019-02-27 207  
55490 2022년은 호랑이 띠인가요? [1] 만만새 2019-02-27 354  
55489 는중이는 오늘 지각이네요.. [1] 로즈마미 2019-02-27 149  
55488 모여요~~~ [9] 만만새 2019-02-27 388  
55487 뼈를 주고 뼈를 침.jpg [1] 로즈마미 2019-02-26 303  
55486 대박 아님 쪽박(랜선연애의 현실화) [8] 만만새 2019-02-26 701  
55485 남의 인생에 피해주는 사람들, [3] 여자 2019-02-26 438  
55484 세상엔 왤케 이쁘고 똑똑한 여자분들이 많은지 [1] Rooibos0 2019-02-26 736  
55483 연애를 할 수 있을까요 [8] littlestar&lt;3 2019-02-26 829  
55482 모순된 페미니즘? dudu12 2019-02-25 175  
55481 봄맞이 대청소 [5] 미래2 2019-02-25 272  
55480 [서울 홍대/합정] 독서모임 '히치하이킹' 3월 모임(67회)에 초대합니... 하루아범 2019-02-25 225  
55479 자폐증 초등학생 집에서 초코파이 먹다 질식사 [1] 로즈마미 2019-02-25 308  
55478 너무 자기고민만 얘기하는 친구.. [3] 단사과 2019-02-25 503  
55477 유물 가져가실분~ [4] 만만새 2019-02-25 330  
55476 이런 헤어짐 [5] Takethis 2019-02-25 469  
55475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얘기는? [8] 몽이누나 2019-02-25 344  
55474 연두하세연~ 만만새 2019-02-24 132  
55473 남동생 이야기 만만새 2019-02-24 215  
55472 위염+식도염 때문에 고생인데 혹시 치료하신분 있나요 ㅠㅠ [8] cosette 2019-02-24 400  
55471 내고향 만만새 2019-02-23 138  
55470 사춘기 학생의 발언 ㅜ.ㅠ [5] 쉘브르 2019-02-23 512  
55469 이직 원래 이렇게 힘든가요ㅜㅜ [1] 25hrs 2019-02-22 350  
55468 새봄(0) 만만새 2019-02-22 142  
55467 새벽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깬 이유 [2] 몽이누나 2019-02-22 349  
55466 현재의 맹목적인 북한과의 '평화' 메세지가 위험한 이유 Quentum 2019-02-22 104  
55465 유혹을 받았어요 기도를 다시 시작했어요 [2] 만만새 2019-02-22 513  
55464 언니가 형부로 인해 고통 받는데 제가 어떻게 도와줄수 있을까요? [5] 토끼마우스 2019-02-21 724  
55463 야구장의 상남자 [3] 로즈마미 2019-02-21 326  
55462 스몰톡 [1] 만만새 2019-02-21 192  
55461 늦잠 꾸러기.. [1] 여자 2019-02-20 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