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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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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도소에서 나는 모과라고 불린다. 이유는 모른다. 공연 음란죄라는 죄목으로 의정부 교도소에 갇힌 지도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을 돌이켜보면 후회와 분노만이 자리하고 있다. 그때 내가 공원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내가 참았더라면... 그러나 이제는 먼 추억의 이야기일 뿐, 나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지옥같은 곳에서 시간을 지워나가는 일 뿐이다. 처음에는 분명 나도 이 안에서 인생의 어떤 기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조금 더 이 담벽에 익숙해지다보니 다 부질없는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교도소에서 희망을 가지는 것은, 교도소에서 건설적으로 내 삶의 변화를 일으키려는 것은 전부 다 부질없는 일이다. 이 곳에서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은 오로지 시간을 조금 더 빨리 가게 하는 몸부림 뿐이다. 우리는 담 안의 가상현실을 살고 있기에 그 어떤 것도 담 밖의 진짜 세계와 연결되지 않는다. 이 안에서 제소자들은 서로를 호형호제하며 우정을 과시하지만, 그 우정은 20년을 알고 지내도 한명이 담 밖으로 나가면 한순간에 바스라지는, 시든 꽃잎같은 우정이다. 사랑이라는 낯 간지러운 단어는 더더욱 그러하다. 가끔 절망 속에 허우적대다보면 그 단어들이 인식의 이곳 저곳에서 존재를 돌출시키지만 당신을 낳아준 어머니조차 첫 몇개월이 지나면 발길을 끊는 곳이 바로 교도소라는 장소다. 교도소는 고립 속에서 망각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곳이지만 결국 내가 망각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하는 장소다.


그렇게 사람들이 오가고 땀 흘리며 웃고 족구를 한다. 어제 이 방에서 한 사람이 출소했으니 누군가 새로 들어오겠지만 아마도 또 스쳐나가는 누군가일 것이다. 어차피 교도소에서 관계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돌리지 않기 위한 얄팍한 도덕과 준비된 미소가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새로 들어오면 기꺼이 웃어주리라. 또 웃어주리라. 계속 웃어주리라. 나에게 칼을 들이대기 전까지 웃어주리라.


_


그리고 그가 이감되었다. 이름은 구리동동. 그의 본명은 구리동동이 아니며 외국인 또한 아니다. 외국인 제소자는 모두 천안교도소로 가지 이곳으로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음울한 눈빛과 감호등록 중에 교도관에게 괜한 소리를 해서 맞다가 생겼다는 눈두덩의 구리색 피멍이 그의 존재를 다른 이들과 구별지었다. 그리하여 모두가 그를 구리동동이라 불렀다. 역시 이유는 모른다.


구리동동은 교도소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군대에 관심병사라는 존재가 있다면, 교도소에는 요시찰이라는 존재들이 있는데, 노란 명찰을 하고 다니며 교도관의 지시를 항상 받는 그런 요주의 인물이란 이야기다. 아마 지난 징역이나 지난 교도소에서 누군가와 싸우거나 했겠지. 그의 외양으론 그가 요시찰을 받았다는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억울한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녀석이 아직 자신의 울분을 다 쏟지 못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고 축 늘어진 팔과 구부정한 등은 다른 제소자들이 말이라도 걸면 한결 더 움츠러들어 그 몸짓 사이로 그의 연약함이 비어져 나오는 듯 햇다. 어쨌거나 사소한 소개가 끝나고 그는 우리조로 들어와 작업을 같이 하게 되었고 첫 날의 작업은 무난하게 지나갔다. 그는 눈으로 수억겹의 원망을 뿜고 있었지만, 입은 침묵하고 있었으며 교도소의 첫날이 그러하듯 의례 자기자신을 감추고 있었다.


나는 조장이었다. 나의 임무 중에 하나는 새로 온 제소자가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그 제소자의 이런 저런 사항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이 작업장에 처음 왔을 때 첫 간보기를 잘 넘긴 탓에 단단함을 인정받아 조장이라는 완장을 차고 있었고, 교도관의 눈치에 못 이겨 하릴없이 구리동동에게 다가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야 내가 여기 조장이다"

"...네."

"몇 년?"

"아 씨바 길어요."

"야 여기 다 길어. 저기 뒤에 빼빠질 하는 반장은 15년이고, 저기 함마들고 오는 애는 10년이다. 그런 거 가지고 생색내지 말지?"

그는 잠시 내 눈을 보고 다시 허공으로 눈길을 던지고는 입을 열었다.

"7년이요."

"뭔 짓을 했길래 그렇게 받았냐?"

"특수 상해 및 감금 폭행이요. 여자친구한테 차여서 후배새끼한테 내 얘기 좀 했더니 집에 가겠다잖아요. 그래서 못 가게 문 잠그고 그 새끼 전화기 숨겨놓고 1주일 같이 있다 집 가라고 문 열어주니까 그 길로 짭새한테 가서 신고하더라구요. 하필 그때 조선족 연쇄살인인지 뭔지 하도 떠들어대서 세게 받았어요."

"근데 특수 상해는 뭐야?"

"자꾸 손으로 귀를 막길래 옛날에 지구대에서 훔쳐온 수갑으로 창틀에 묶어뒀더니 인대가 늘어놨다나... 아 생각만 해도 빡치네."

"아무튼 환영한다."


모든 제소자가 억울하게 당해서 온 곳이 교도소다. 결코 그렇지 않을텐데 누구나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교도소에선 그런 부분에 의문을 가지면 안된다.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 물론 그는 교도소보다는 병원에 가야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아무렴 상관없는 일이었다.


"넌 왜 노란명찰 달았냐?"

"아 전에 있던 교도소에는 좆밥들이 너무 많아서 그랬어요."

"야 좆밥 못 이겨먹으면 교도소 생활 어떻게 할려고 교도소 왔냐? 그거 달면 니만 뺑이야."

"어차피 가석방 신청 받아들여지지도 않을텐데요 뭘."

"모과형이라고 불러라. 다들 그렇게 불러. 여기 좋은 사람들 밖에 없어서 싸울 사람도 없어."


물론 우리 공장에는 최정점의 건달을 기점으로 전과 14범부터 무기 살인범, 근친 상해 치사 두명까지 친절하고 선하며 사회화된 모범수로 가득찬 공장이다. 구리동동은 다시 내 눈을 지그시 쳐다보며 질문했다.


"형은 뭘로 들어오셨어요?"

"공연 음란. 3년 6개월."

"크기에 자신 있었나봐요?"

"너도 기러기 아빠 10년 해봐 새끼야." 


_


그렇게 몇 일이 흘렀다. 구리동동은 다행히도 방에서 또래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교도소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듯 했다. 다른 형들이 구리동동에게 말을 걸 때는 여전히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친해진 사람들에게는 장난도 치는 걸 보니 처음 이감되었을 때보다는 많이 편해진 모습이었다.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으나 교도관들에게는 뭐 괜찮은 놈 같습니다 라고 얼버무렸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흘렀고 모든게 잘되가는 것 같았으나 어느 날 아침 사단이 났다. 구리동동이 울면서 시정관에게 작업장 제소자 몇명이 자기를 괴롭힌다고 보고한 것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 내부의 문제가 시정관선까지 올라가면 작업장 전체가 보안과의 주시대상이 되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되기 때문이다. 교도소 안에서는 공식적으로는 허용되지 않으나  생활의 편의를 위해 허용해주는 행동들이 몇가지 있는데 보안과의 감시 속에서는 그런 행동을 못하게 되고 우리의 삶은 조금씩 고달파진다. 이를테면 가열기로 라면을 끓여먹거나 샤워실에서 면도기를 반납하지 않고 휴대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작업장의 여론 또한 울며 달려간 구리동동에 몹시 적대적이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우리 내부에서 해결하는게 더 쉬운 방법이다. 구리동동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 녀석은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전체에게 피해를 줬다. 그런 애처롭고 남에게 의지하는 태도는 교도소에서는 존중받지 못한다. 짜증이 솟구쳐 올라온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것이 구리동동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담벽에 몇개월 몇년을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몸 속에 쌓이는 짜증과 분노다. 이것들을 담아놓을 길이 없어 종종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 특정 약자에게 터뜨리지만 이 짜증은 내 안의 충족되지 못한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잘 막아왔으나 이렇게 계기가 생기면 그 에너지는 혈관을 타고 내 목을 휘감아 악의로써 터져나온다.


그렇다고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소리를 높여봤자 보안과의 미움만 살 뿐이다. 하지만 조장으로써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운동장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있는 구리동동이 눈에 띄었다.


"야!"

"....왜요."

"넌 뭔 짓을 했길래 또 맞은 거야?"

"아 형은 잘 모르잖아요. 쟤가 나더러 못생겼다잖아요."

"뭔 소리야?"

"여자친구한테 차이고 여자친구 만들고 싶어서 주변 애들한테 여자 소개해달랐는데 안 해줘서 짜증난다고 했더니 대뜸 저딴 소리를 하는 거에요."

"그러더니 걔가 때린거야?"

"아뇨 그래서 그 새기더러 여유를 가지라고 하니까 막 소리를 지르더니 옆에 있는 삽으로 저를 내려치길래 한참 맞다가 도망친거에요."

"넌 맨날 니 차인 얘기만 하냐?"

"못 살겠어서 하는 얘긴데 들어주면 안되요? 아 여기 사람들 너무 좆밥같아요."

"야 누가 자꾸를 좆밥처럼 굴면 상대방이 좆밥인 걸 의심할게 아니라 니가 좆밥인 걸 의심해야되"

"아 몰라요."

"넌 임마 노란명찰 달고 청송 교도소라도 갈려고 그러냐? 좀 참아."

"형도 나한테 소리 지르는 거 보니까 참는 스타일 아닌데요 뭘. 하여간 여기 사람들은 다 저능해요."

삽으로 내려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그래도 참으라며 말을 마쳤다.


작업장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는 안정이 된 듯 했다. 내 생각에 그 대화는 그저 제소자 간의 일상적인 소통중에 하나였으나 아마 그에겐 같은 편이라는 일종의 지표였나보다. 그 후로 그는 나에게 친근한 제스쳐를 보였다. 교도소의 권력관계 속에서 하위 초식 동물이 상위 포식자를 대하는 굴복이 아닌 무리 속의 동료에게 식량을 건네는 달콤한 친근함이랄까? 그는 자꾸 나와 이야기를 하려했고, 나 또한 딱히 꺼리지는 않았다.


_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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