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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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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만 가면 연락이 끊어지는 여자가 있다. 기분만 상하면 잠수 타는 남자가 있다. 보통은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참거나 매달린다. 누군가는 이런 양상을 갑을관계로 정의한다. 내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쪽이 갑이다. 그리고 권력에 굴복해 씁쓸히 약자임을 자인하는 을이 있다. 흔히 권력은 불균형의 결과물이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비해 가진 것이 적거나 많을 때. 천천히 관계에 권력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연인관계의 경우 이를 결정짓는 변수는 애정이다. 특히 집착적 소유욕에 기반한, 애정일수록 그러하다. 애정이 불균형할 때 권력관계는 시작된다.


관계에 권력이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바로 갑을관계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권력은 남용됐을 때만 폭력성을 띤다. 남용에 이르는 단계는 마약에 중독돼가는 과정과도 흡사하다. 일단 처음으로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행위의 마약적 단 맛을 본다. 보통은 연인들이 처음으로 서로 다투거나, 이별을 말하게 되는 상황에서다. 관계를 쥐고 흔드는 쾌락을 알게된 뒤. 다시 말해 "이 관계는 결과적으로 내가 원해서 계속 맺고 있는 관계이며, 상대방의 필요나 욕구와는 관계 없이 내가 더는 원치 않는다면 언제든 끝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뒤. 스스로가 강자임을 알게 된 뒤 어느 한 쪽이 이를 남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차츰 중독된다.


술자리에서 연락이 끊긴 여자친구를 걱정해 남자는 수 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긴다. 취한 여자친구가 술집 복도에서 미끄러져 다치지나 않을까. 만취 상태로 찬 길바닥에 쓰러져 못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지나 않을까. 남자는 수많은 걱정을 하다가도 여자의 연락 한 번에 눈 녹듯 화를 푼다. 집에 잘 들어왔다며, 연락 못받아서 미안했다며. 그렇게 건네는 다정한 한마디에 "아냐 그럴 수도 있지. 속은 좀 괜찮고?" 묻고는 다정히 안아주리라. 여자는 그렇게 믿고 있다.


여자 쪽도 이는 마찬가지여서, 때로 바람 핀 남자를 다시 받아주기도 한다. 너 뿐이야, 라는 말. 너와는 헤어지고 싶지 않아,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없을 거야. 결국 난 너 밖에 없어, 따위의 말. 그 말에 여자에겐 남자와의 관계가 세상에서 둘 도 없이 특별해지고 만다. 그의 상처를 안아 줄 사람은 나 뿐이라는 대승적 희생정신으로. 그녀는 그의 바람끼를 기꺼이 감내한다.


대개의 약자가 비슷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부조리한 상황이지만 약자는 늘 소심하다. 대기업의 횡포에 휘둘리는 하청 중소기업처럼, 계약 조건 수정 운운하다 거래선이 끊긴다. 괜스레 입을 댔다가는 더 큰 화를 입게될지도 모르기에. 약자는 오늘도 깊은 한숨을 그저 속으로 삼킨다.


그러나 더 많이 좋아하는 것은 정말 지는 일인가. 바보 같은 생각이다. 사람의 심장과 심장을, 혹은 정신과 정신을 직결하는 USB 케이블이 나오기 전 까지. 아마 우리 모두는 근본적으로 타인과 하나가 될 수 없는. 슬픈 숙명을 지닌 개별적 인간이다.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포용력과 관용이 있다. 이해심과 이타심이 있다. 자기만 생각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 보다는 타인을 웃게 만들고 행복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 훨씬 성숙한 인간이다.


연애 경험이 꽤 많은데도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 사귀면 꽤 오래 사귀는데도. 상대를 어떻게 사랑할지 모르겠다고.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좋아해서 만나는 건지 헷갈린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랑받기를 갈구한다. 그리고 사랑 하기를 두려워한다. 내 자존심을 버리고. 눈 앞의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존재를 온전히 던지는 일이 무섭다. 거부당할까봐. 버림받을까봐.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고 싶지 않다며 역정을 내거나 상대에게 집착하지 말라며 다그치는 이들은 실은 누구보다도 두려움이 많은 약자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갑을관계에 더 집착하게 된다. 이들에겐 천천히 시간을 갖고 두려움을 희석해 줄 수 있는 성숙한 상대가 필요하다. 더 좋아하는 쪽이, 실은 강자다.


잠시 스치는 인연이라면. 한 쪽이 권력을 휘둘러 대더라도 다른 한쪽이 그 것을 감내하면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위로가 있을 때, 권력 중독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미래를 꿈꾸는 연인이라면. 권력에 중독돼선 안 된다. 상대의 중독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마약이 심신을 파괴하듯, 연인관계에서의 권력 중독도 결과가 같다. 파국이다.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면 더 큰 비극이다. 한을 쌓으며 인생을 살거나, 중요한 무언가가 결핍된 관계를 유지한 채 생을 낭비한다. 일방적 관계는 비정상이다.


스스로가 마약 공급책이라면. 내가 파는 마약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중독된다면 어쩔 것인가. 상대가 대는 약값으로 난 연명하고, 상대는 이미 약 없이는 살 수 없다면 어쩔 것인가. 이런 기형적 관계는 끝이 안 좋다. 한 쪽이 경찰에 붙잡혀 가고, 다른 한 쪽은 약물 중독으로 자살할 것이다.


연애 관계의 을들은 갑이 약을 끊도록 만들어야 한다. 당신이 지금 휘두르고 있는 폭력으로 내 마음이 이만큼 다쳤음을 반드시 내보여야 한다. 그 마음의 참상이 담뱃갑에 붙은 썩은 폐의 사진처럼, 혹은 흉하게 비썩 말라 비틀어져 병상에 누운 약물 중독자의 초상 만큼이나 비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둘 다 불행해지기 때문에 한 쪽은 용기를 내야 한다.


치료에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혹은 환자가 치료를 거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와 환자들도 간혹 그러잖은가. 노력을 해도 연이 안 닿는 관계라면, 상대에게 역지사지를 할 만큼의 애정이 없는 관계라면. 일찌감치 정리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여전히 연인관계에서 스스로가 약자라고 생각하는, 피해의식에 찌들어 상대가 휘두르는 대로 상처입고 또 상처입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생각해 보라. 스스로가 실은, 강한 의사였음을.




elief

2013.03.11 08:06:22

공감하고 갑니다!

라임오렌지

2013.03.11 10:55:56

잘읽었어요..

Goozzang

2013.03.11 13:27:36

을이였던 적이 더 많다보니 생각을 하며 읽게됬습니다...

시즈카

2013.03.11 17:05:18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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