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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니 새벽 3시였어요.

캄캄한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열고 딸칵 내 방 불을 켜기 전에 캄캄한 방에 그대로 잠깐 누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오늘 참 즐겁게 보냈구나. 그런 생각이 어두운 내 방 구석에서 빼꼼 고개를 들이밉니다.

시작은 2012년도 데이팅 앱으로 알게 되어 몇 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알고 보니 같은 동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사람이어서 친구 하자 악수하고 몇 번이나 만났어요. 대전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타향살이하는 친구였는데 자취하던 그네 집에 들러 치킨 먹으면서 축구를 보거나 어느 조깅하던 날, 일부러 집 앞에 들러 물을 얻어 마시고 옥상 계단에 앉아 바다 보며 맥주 마시거나. 곱창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친구가 알바하던 카페 앞 테라스에 포스트잇을 붙인 틴트를 두고 가거나. 그 시절, 친구 덕분에 예쁜 추억들이 참 많았었네요

친구는 노골적으로(?) 제가 좋다면서, 사귀자는 말보다 먼저 결혼하잔 말로 대했어요. 저는 그럴 때마다 한발 뒤로 뺐어요. 결혼은 그때의 내겐 너무 먼 얘기거니와 이 친구와는 오래 친구로 남고 싶은 마음이 컸나봐요. 만나고 헤어지는 길에서 포옹 한 번만 하자는 친구 말에도 끝까지 포옹 한번 하지 않았어요. 인간 대 인간으로 생각하면 그 쉬운걸, 저는 쓸데없이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걸 막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친구는 대전에 직장을 구해 방을 빼고. 방을 빼던 날 소파 하나를 집에서 못 빼내 나를 불러 둘이서 그 무거운 걸 들고 집 앞 언덕을 내려오다, 바보같이 넘어져 나는 엉엉 아쉬워했습니다.

그런 친구가 부산에 놀러 온 날이었거든요. 어머니와 둘이서 여행 내려와 시간 내어 저를 만나준 일입니다. “이제야 너를 보는구나!” 하면서 제 손을 덥석 잡아주시는 어머니. “영통으로만 뵈다가 이렇게 뵈니까 너무 좋아요.” 하면서 오래 알고 지낸 인연처럼 반가워 횟집 앞에서 방방 뛰었어요.

이제는 친구도 나를 마음에서 내려놓아 몇 번의 연애와 헤어짐을 반복하고 그때마다 나는 옆에서 잔소리와 충고를 섞어 핀잔주고, 이번에 본 소개팅은 어떻게 되었냐고 결과를 알면서도 어머니 앞에서 친구를 놀려 봅니다. “야 이젠 너랑 포옹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니 누가 너랑 안아준다냐? 정색해 버리는 친구가 나는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 손톱이 짧아서 너무 예쁘다. 나를 예쁘게 봐주시는 어머니도 너무 좋습니다. 예쁘다는 말을 해준 사람이 전에 있었던가. 잠깐 생각에 빠져 보기도 하고.

셋이서 노래방에 갔다가. 친구는 또 다른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 택시에서 먼저 내리고, 어머니를 집 앞에 모셔다드리고 집에 돌아왔어요. 내릴 때 얼른 따라 내려 어머니를 깊게 안고 다시 택시 타길 잘한 것 같아요. 횟집에서 어머니가 딸인 이 친구에게 말하길, 얘가 참 인복이 많아. 하셨는데 정말 인복이 두터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저는 아무래도 저 같은데.


만만새

2019.03.03 18:08:26

새벽 3시 가 점점 밝아지고 있어요.

몽이누나

2019.03.03 23:38:50

옥상 계단에서 바다보며 맥주에서 헛! 하고 잠시 멈췄어요. 부산에 살면 흔한 일이려나요.. 흐헝헝...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

빈빈

2019.03.04 00:39:23

글이 예뻐요 영화같아요.. 그분과 글쓴이님은 참 좋은 인연이네요

라영

2019.03.04 10:09:53

그러게요 뭔가 청춘영화 느낌이 나네요. 사귀지 않았기 때문에 더 예쁜 추억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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