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FILE
  • COLUMNS
  • FREETALK
  • BOOKS
  • SCHOOL
  • 회원가입
  • 아이디&패스워드 찾기
FREETALK
글 수 55,759



  초콜릿은 녹여서 굳히면 끝이야.

  물론 그 ‘녹이고’ ‘굳히는’ 게 만만찮은 일은 아니죠. 그렇게 쉬우면 쇼콜라티에라는 직업이 왜 있게요. 하지만 그냥 ‘수제입니다’ 하고 생색내서 선물할 용도라면 꽤 간단해요. 요즘에는 만들기 키트도 정말 잘 나와서, 설명서에서 하라는 대로 녹이고 붙이고 굳히면 꽤 근사한 초콜릿이 만들어지더라고요. 이렇게 쉬운 걸, 그때는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중학교 이학년 때였어요. 하루 이틀 뒤면 화이트 데이였죠.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냥 그렇게 흘려 보냈겠지만, 그때 전 같은 반 여자애를 좋아하고 있었어요. 아주 귀여운 목소리의 여자애. 얼굴에는 사춘기 여자애답게 두드러기가 한두개 났지만 괜찮았답니다. 욕심많은 성격의 여성을 지금도 좋아하는데 그때도 그랬어요. 아무튼 저 혼자하는 짝사랑 이었습니다. 근데 왜 사탕이 아니냐구요? 그냥 제가 사탕보다 초콜렛을 좋아해서요.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화이트 데이가 오니 없던 용기가 생겼어요. 친구를 불러서 우리 집 부엌에서 ‘중탕’이라는 걸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손이 참 둔하거든요. 초등학교 실습시간에 팬케이크도 홀랑 다 태워먹은 무서운 재능이 이 순간에도 나타나더군요. 중탕 그릇에 있던 물이 초콜릿 그릇에 다 들어가고, 불을 너무 세게 해서 기름이 분리되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어요. 사온 가나초콜릿을 다 써서 나가서 사오고, 또 사오고. 어떻게든 보잘것없는 초콜릿 여덟 개를 만들었어요. 주방은 난리가 났는데 때마침 엄마가 딱 들어오더군요. 가스렌지에 늘어붙은 초콜릿과, 더럽기 짝이 없는 아들내미를 보더니 한마디. 

  “그거 누구 줄려고?”
  “……있어!”

  평소 같으면 소리 빽 지르고 한숨 팍 내쉬고 걸레를 북북 문질렀을 엄마가, ‘초콜릿’을 보고 뭔가 짚이는 게 있던지 아무 말도 안하더군요. 이걸 어디다 넣어야할지 고민하는데, 엄마가 일본 전통 라멘집 느낌나는 나무통 하나를 주더라고요. 그래도 예쁜 포장지에 넣어서 주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사실 이정도로 잔소리 안 들은 것도 행운이라 일단 거기에 넣긴 넣었어요. 이런 통에 넣어야 직접 만든 느낌이 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수긍이 가기도 했고요. 다음날 아침, 냉장고에서 그걸 꺼내서 가방에 넣을 때는 제법 가슴이 떨렸어요.

  남녀공학 중학교라 그랬는지 화이트 데이에 학교가 아주 난리였어요. 어쨌든 오전수업이 지나가고 점심시간에 애써 용기를 내어 말했어요. 물론 혼자 있을 때였죠. 청소 끝나고 5시에 주차장 후문쪽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전 그날 청소당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가 끝난다음 마냥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되었죠.

  그 여자애가 오는데 심장이 막 뛰어요. 멍충이처럼 손도 발발 떨리고요. 애써 꼭 쥐고 한 걸음 앞으로 가려는데, 돌에 걸려 몸이 앞으로 확 넘어졌어요. 통에 담겼던 초콜릿이 바닥으로 와르르 떨어져 버렸어요. 하필 거기는 화단 쪽이어서 초콜릿에 모래까지 잔뜩 묻었죠.




뒷이야기는 좀 길어 여기에서 끊고 에피소드 2편에서 계속 쓰겠습니다.



만만새

2019.03.26 15:29:06

ㅋㅋ2편 빨리 올려주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추천
공지 신작 산문집 [다정한 구원]이 출간되었습니다. file 캣우먼 2019-05-30 639  
공지 <캣우먼>'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업로... [5] 캣우먼 2019-03-18 1107  
공지 소설집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 출간되었어요! file [2] 캣우먼 2018-09-04 2410  
공지 에세이 <교토에 다녀왔습니다.>가 출간되었습니다! file [1] 캣우먼 2017-08-31 14880 1
공지 에세이<자유로울 것>이 출간되었습니다- file [7] 캣우먼 2017-01-23 48402 3
공지 여행서 <임경선의 도쿄>가 출간되었습니다!! file [12] 캣우먼 2016-04-07 86272 5
공지 장편소설 <나의 남자>가 3월 1일에 출간되었습니다. file [12] 캣우먼 2016-02-29 91118 4
공지 에세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이 10월20일에 출간되었습니다 : ) file [5] 캣우먼 2015-10-19 109124 2
공지 산문 [태도에 관하여]가 3월30일 출간됩니다. file [15] 캣우먼 2015-03-27 130325 2
공지 장편소설 [기억해줘]가 출간되었습니다 : ) file [11] 캣우먼 2014-10-14 222059 2
공지 자주 묻는 질문 / 문의하기 관리자 2013-08-14 357822 2
공지 산문집 [나라는 여자]가 나왔습니다. file [40] 캣우먼 2013-04-16 384249 10
55653 다리 꼬지마 [1] Takethis 2019-06-08 314  
55652 5.18 기념식장에서 전두환씨가 그래도 경제 발전에 공이 있으니 그점... 윈드러너 2019-06-07 115  
55651 스벅 프리퀀시 교환하실분~~ㅋ 새롭게시작. 2019-06-07 140  
55650 스몰톡. [1] St.Felix 2019-06-07 317  
55649 소개팅 연하남 사귀기 첫날에 모텔가자고.. [8] 러브어페어 2019-06-07 1279  
55648 요약) 결혼준비중입니다 원래 이런건가요?ㅠㅠ [10] 요이땅 2019-06-06 1058  
55647 결혼준비중입니다 원래 이런건가요?ㅠㅠ [4] 요이땅 2019-06-06 497  
55646 끝이 보이는데 감정에 이끌려 사귀시나요? [4] Young올드맨 2019-06-06 586  
55645 어떤 사람일까 [7] enzomari 2019-06-03 697  
55644 장기간 연애 경험이 있는 사람들.. [8] tlfgdj 2019-06-03 835  
55643 제가 보낸 주말은요. [3] 십일월달력 2019-06-03 360  
55642 남친 말 해석 부탁드려요 [4] 폼폼이 2019-06-03 543  
55641 서울광장에서 퀴어 축제 하는데 보니까 이석기를 석방하자고 포스터 ... 윈드러너 2019-06-02 105  
55640 이런 쓰레기 찾기도 힘들죠? [5] maya1609 2019-06-02 665  
55639 이건 어떤 느낌일까요? 와아. [1] 아하하하하하하 2019-05-31 404  
55638 사랑의 완성은 [2] 아하하하하하하 2019-05-31 373  
55637 첫발을 내딛다 뾰로롱- 2019-05-30 145  
55636 우리나라의 뷔폐식 여성인권 [1] 윈드러너 2019-05-29 209  
55635 잠수남친 어쩔까요ㅠ [6] 뮤아 2019-05-29 720  
55634 세흔사! 세흔사 2019-05-28 155  
55633 세흔사? 세흔사 2019-05-28 153  
55632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옴 세흔사 2019-05-28 187  
55631 ㅇ 날 구속하고 독점하려 했던 여자들에게 고함 [1] 에로고양이 2019-05-28 453  
55630 두 번째 만나고 왔어요~ songU 2019-05-28 241  
55629 스피드데이팅 (커피데이트) 라떼달달 2019-05-25 295  
55628 해줄 수 없는 일 [4] 십일월달력 2019-05-24 571  
55627 미용실 추천해주세요!!!! [2] 넬로 2019-05-24 330  
55626 제목 펑 ! [11] songU 2019-05-23 634  
55625 생각 [2] resolc 2019-05-23 231  
55624 민주당은 5년의 권력 이후 큰 시련에 빠질것입니다. [4] 윈드러너 2019-05-22 300  
55623 이 관계 계속해도 될까요? [3] 강냉이 2019-05-22 683  
55622 그사람의 반짝거림에 대하여.. [4] 뾰로롱- 2019-05-22 522  
55621 몸만 원하는 것 같은 남자와 사귀기로 했어요 [10] 속삭임 2019-05-22 1405  
55620 엄마에 대한. [4] 라영 2019-05-22 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