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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TALK
글 수 54,338

봉봉2님께

조회 5061 추천 11 2014.03.04 13:26:20

봉봉2님,


쉬운 이야기를 괜히 있어보이게 포장한 게 아닌가 싶어 민망하네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한줄로 쓰자니 지나치게 추상화가 되었네요.


"나이가 어느 이상 되면 외적 조건이 성격적 조건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라는 말이 어떤 의미였냐면요,


남자 나이가 서른이라 칩시다.  저는 남자의 학벌을 보는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무시할 순 없죠.  제가 남자의 학벌을 본 방식은 이랬습니다.  소개받을 때는 학벌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스무살 때의 성취도가 남은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러나 남자 나이가 서른이라면 스무살 때의 성취도를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지금 시점에서 돌아볼 수 있습니다.  스무살 때의 일류대 진학이 서른이 된 지금까지도 인생의 가장 큰 성취인지, 아니면 스무살 때는 여러 가지 상황상 성취도가 높지 않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그걸 충분히 극복해왔는지는 그 남자가 지금 어디에 와 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통해 알 수 있거든요.  제가 중요하게 본 것은 그래프에서 스무살과 서른살 사이에 그려져 있는 화살표의 방향이었습니다.  제가 보려던 성격적-인격적 조건은 진취성과 높은 성취도였구요, 스무살부터 서른살 사이에 이 사람이 보여준 행적이 그 인격적 조건을 반영한 외적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경제력에 대해서라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역시 남자의 현재 직업이나 연봉은 크게 따지지 않았습니다.  Fall 님의 본글 밑에도 누군가 답글로 쓰신 것처럼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잃는다거나 그런 일들도 생기거든요.  그런데 제가 중요하게 여겼던 성격적 조건은, 혹시 실직하더라도 다음날 나가서 리어카라도 끄는 근성이었습니다.  컴플렉스에 빠져 세상 원망하며 가족들한테 짜증내는 거 말고요.  그런데 제 남편은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별로 못 받고 혼자 힘으로 학교 다니면서 앞길을 개척한 사람이더라구요.  그러면서도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나 조건 좋은 사람들에 대한 컴플렉스가 없었습니다.  제가 원했던 성격적 조건이 근성이었고, 현재 이 사람이 살고 있는 모습이 그 근성을 드러내보여 주는 외적 조건이 되는 것이죠.


사람들마다 배우자로부터 다른 성격적 조건을 원할 테지만, 제가 말한 "외적 조건이 성격적 조건을 반영한다"는 건 그런 뜻이었습니다.  남자 나이가 어리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서 지금 여기에 와 있는지 알기가 어렵지만, 남자 나이가 많을수록 그 사람이 과거에서 현재에 도달한 과정은 그 사람의 미래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여자도 마찬가지겠지만요.                


그게 결혼생활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물어보셨는데요... 결정적인 순간에 배우자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습니다.  몇 가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성격적 장점을 그 사람이 정말로 갖고 있다면, 살면서 마음에 안 드는 점, 힘든 상황들 많이 있지만, 그래도 내 배우자가 내가 생각하고 결혼했던 그 사람이라는 것은 굉장한 안정감을 주지요.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살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것도 결혼생활에는 엄청난 힘이 됩니다.  부모형제는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가족이지만, 남편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족이거든요.  가족끼리 어쩔 수 없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처럼, 남편과의 interaction은 결혼 이후 나라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동력이거든요. 십대 때 친구들 영향을 많이 받듯이 결혼 이후로는 배우자의 영향을 받게 돼요.  그래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성격적 장점을 갖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정말로 그런 장점을 갖고 있는지를 보려면 그 사람의 외적인 단서들을 통해 파악하는 수밖에 없고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장황하게 되었네요.         

 





Karma

2014.03.04 13:32:11

추천
1

저도 자기 가족을 무슨 일을 해도 먹여살리겠다는 근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나도 그런 근성이 있는데

상대도 그런 근성이 없다면 너무 실망스러울 것 같았어요.

그리고 사람은 같이 있으면서 자꾸 자기가 멋진 사람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과 함께 있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멋지네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사람을 골라서

결혼해서 사는 사람이 있다니. 전 그냥 제 환상일뿐인건

아닌가 하는 회의가 생겨버렸거든요.



ahjviolet

2014.03.04 13:35:11

앞으로 결혼을 함에 있어 도움이 많이 되는 조언입니다.

감사해요-

러패에서 참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것 같습니다.

`Valar morghulis`

2014.03.04 13:42:34

좀 깨는 이야기이긴 하지만ㅎ

저런 조건을 가진 사람은 외적 매력이 성에 안차더라구요ㅎ

저런조건을 알고있으면 뭐하나요. 그사람이 좋지 않은데..

공감하는 이야기들이긴 하나 다 부수적인것들이라고 생각해요. 가장중요한 내가 '좋아하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나머지는 옵션처럼 따라오거나 없던 옵션도 생긴다고봅니다ㅋㅋ

슈코

2014.03.04 13:47:24

좋은 글이에요.. 읽으면서 가슴이 뛰네요.

감사해요 ^-^

Adelaide

2014.03.04 13:51:25

"제가 중요하게 여겼던 성격적 조건은,

혹시 실직하더라도 다음날 나가서 리어카라도 끄는 근성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나 

조건 좋은 사람들에 대한 컴플렉스가 없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배우자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살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것도 결혼생활에는 엄청난 힘이 됩니다." 

 

"남편과의 interaction은 결혼 이후 나라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동력이거든요. 

십대 때 친구들 영향을 많이 받듯이 결혼 이후로는 배우자의 영향을 받게 돼요.  그

래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성격적 장점을 갖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정말로 그런 장점을 갖고 있는지를 보려면 그 사람의 외적인 단서들을 통해 파악하는 수밖에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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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정리 안된 생각을,

나보다 글솜씨가 좋으신 분이 대필이라도 해 주신 것 같네요.

구구절절 공감해요. 마지막 문단은 정말 페북에라도 퍼가고 싶네요 ㅋㅋ

 

요약하자면, "여자들아, 조건을 볼려면 제대로 된 조건을 봐라"

정도가 되지 않을지 ㅋㅋㅋ 

 

결국 여자들이 학벌이나 경제력을 보는 이유가 결국은

이 글에 표현되어 있는 '남자의 내적 근성'을 보려는 의도일텐데,

언제부터인가 본말이 전도되면서

외적인 결과가 있으면, 당연히 그 안에 '내적인 근성'도 있을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결혼하다보니, 많은 불행한 결혼의 원인이 된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미혼인 친구들한테 꼭 보여주고 싶은 글이에요.

 

그렇다고 이 글을 기준으로 배우자를 선택해라, 하기에는 좀 애매하지만...

(왜냐하면 사랑하게 된 대상이 내가 생각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할 수도 있죠..)

 

그래도 이 글을 기준으로 내가 선택한 사람이 어느 방면으로 나를 속 썪일지

적어도 미연에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고 봐요...

'일단은 좀 알고' 선택한다면, 결혼에 임하는 각오 자체가 좀 다르겠지요....

 

 

 

오모낫

2014.03.04 13:55:28

감사합니다!!^^

크래커

2014.03.04 14:02:27

얼마전 고딩때 썼던 다이어리에 '학벌 높은 사람은 천편일률적이라서 싫다.

나는 개성적인 남자가 좋다!' 이런 글을 써놓은 걸 보고 한참 웃었는데요.

며칠전 본가가 이사를 해서 가서 도와드렸는데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을 보며

많은걸 느꼈는데요. 하루종일 몸쓰는 일을 하면서도 짜증한번 안부리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착한 아저씨들이어서 그런건지도 모르겠지만.)

제 모습을 돌아봤는데요. 저는 사무직을 하고 있고 앉아서 하는일이

적성에 맞는편이고 몸쓰는 일하면 짜증부터 올라오는 편이거든요.

제가 갖고 있지 못한 부분을 가진 분들이어서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들구요.

사무직 남자들이 따분하게 느껴지는 면이 분명히 있는게.

저랑 비슷한 성향일 것같애서요. 같이 사는데 몸쓰는 일이 필요한데

같은 성향이면 누가 그일을 하겠냐구요.ㅎㅎ

중요한건 몸쓰는 일이건 사무직이건.

그 '근성' 이라는게 중요하다는거.

그런 생각이 드네요.

 

3월이

2014.03.04 14:35:46

현시점의 1차 미분계수를 보고 미래를 예측 한다해도 쉽게 틀릴 수가 있으므로 보다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는 고차 비분계수까지 함께 봐야겠습니다.

샤덴프로이데

2014.03.04 15:03:37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문장이 생각나네요.


"운명은 우연이라기보다 필연 이다 . "운명은 성격 속에 있다" 라는 말은 결코 아무렇게나 생겨난 말이 아니다."

봉봉2

2014.03.04 19:21:44

애플소스님, 이렇게 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짐작한 것과 비슷한 의미였는데, 그것 외에도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많아서 좋네요 (여기에 모두 적을 수는 없지만 두고두고 곱씹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나이 들면서 깨닫게 된 것 중 하나가, 대학 때 만난 친구들의 1학년 때의 모습과 10년이 지난 후의 모습은 무척 다르다는 거였어요. 그때는 출신학교가 같으니 나중에도 비슷하게들 살 줄 알았는데, 한참이 흐른 후에 사회인으로 만나보니까 그 10년 동안 살아온 것에 따라 모습들이 다들 다르더라고요. 실망스러운 모습의 친구들도 있었고,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된 친구도 있었어요. 스무살 때의 기준으로 배우자를 선택했다면 큰일 났었겠다 싶을 정도더군요.


배우자가 날 변화시킨다는 부분도 와닿아요. 전에 아는 어떤 분이, 원래 자기 성격은 급하고 걱정이 많았는데, 결혼을 했더니 남편은 물론이고 시댁 식구들이 모두 성격이 느긋하고 긍정적이고 편안하더래요. 처음에는 답답하더니 10년쯤 지나니까 어느덧 자기도 웬만한 일에는 걱정 안 하는 성격이 되었더라는 거죠. 그래서 너무 좋더래요. 


제가 막연하게 여기저기서 스치듯 느꼈던 것들을,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중요한 것들, 잊지 않고 새기고 갑니다. ^^  

시이나링고

2014.03.04 20:41:17

인격의 성숙함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애플소스님의 글을 읽고나니 흐릿했던 것들이 뭔가 명확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저런 배우자가 곁에 있다면 함께 걷는 길에 비바람이 불어도 든든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부터라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싶어요ㅎㅎ

감사합니다 ^ㅡ^

곰이야

2014.03.04 20:59:32

멋진글이에요. 추천하고 갑니다 ^^

아란

2014.03.04 21:07:32

저의 10년을 돌아 보게 되네요 ㅎㅎ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전화벨

2014.03.05 01:11:54

미혼여성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감사해요:)

이방카

2014.03.05 14:43:49

이글.. 스크랩 해놓고 생각날때마다 읽어볼 꺼예요..

페르마타7

2014.03.05 22:31:18

작년부터 머리 아프게 고민하던 것들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그 답을 찾은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정말 너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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