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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OL

<이기적인 특강> 학교란?

 

‘내가 듣고 싶은 선생님한테 내가 듣고 싶은 강의를 들어 버릴 테다!’라는 한 개인의 매우 이기적인 이유로 시작이 된 특강 시리즈입니다. 또한 '이기적'이라 함은 강의에서 공유되는 깊은 지혜를 보다 능동적으로 욕심내서 귀담아가려는 바람직한 태도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기적인 특강>은 2012년 2월의 첫 회를 시작으로 연6회 진행될 예정이며 연말에는 한 해 동안 배운 다양한 주제를 두고 자유토론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열린 귀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몸을 낮춰 자신의 지혜를 나눠주시는 선생님과 강의에 집중하고 성실히 필기하며 치열하게 질문하는 학생들을 환영하는 특강입니다. 부디 신뢰와 호의가 충만한 분위기 속에서 배움과 소통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지를 체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기적인 특강>은 수익성 행사가 아니며 결산내역은 투명하게 공개가 됩니다.
• 만약 수익이 발생되면 연말에 일괄적으로 불우어린이를 위한 자선단체에 기부될 예정입니다.

 

이전강의 1~14탄

조회 9892 추천 0 2014.05.25 14:05:32

이기적인 특강 11탄 - 임경선의 관계론 : 트위터에서 깨닫는 관계의 핵심

주제 : 무엇을 위한 문학인가
초대손님 : 신형철 선생님 / 문학평론가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일시 : 2014 727(오후6-8 
장소 : 홍대 상상마당 4층 아카데미 대강의실 (장소후원)
인원 : 65명


내용요약 :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의도에 도달한다는 것과 같지 않다. 작가라고 해서 완벽한 사전 
계획을 세워 놓고 쓰는 것은 아니며 다 쓰고 난 뒤에도 자기가 무엇을 썼는지 늘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 언어라는 매체가 불완전하고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가 있는 그대로 작품 속에 관철되는 것도 아니다. 고로 작품의 의미는 다양한 해석가능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런 
상황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고 심지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해석이 무한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해석이 평등하게 옳은 것은 아니다. 이 해석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이 해석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므로 해석을 한다는 것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속으로 뛰어들어서 다른 해석들과 경쟁하는 일이다. 좋은 해석의 최소조건은 ‘논리’이다. 
작품 자체는 늘 논리적일 필요는 없지만 작품에 대한 해석은 논리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해석은 작품으로부터 내재적으로 일관성 있는 논리적 구조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좋은 해석의 충분조건은 ‘인식의 
생산’이다. 작품 속에 잠재돼 있는 인식을 밖으로 끌어내는 산파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해석자다. 더 심오한 인식을 이끌어낸 해석이 더 좋은 해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작품을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해석은 나쁜 해석이다. 그것은 작품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작품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석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 대상으로서의 ‘이야기’란 무엇인가. 흔히 이야기의 요소로 
인물, 배경, 사건을 든다. (진부한 설명이지만 이 안에 핵심이 다 있다.)

(1)인물은 ‘캐릭터(성격)’이다. 성격이 없으면 인물이 아니라는 것. 돈키호테, 햄릿, 안나 카레니나 등과 
같은 성격은 그것이 이야기의 절반 이상이다. 그런 작품의 제목이 그 인물의 이름으로 돼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성격을 특정한 배경 속에 던져놓으면 이야기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배경은 성격 속에 잠재돼 있는 
이야기를 밖으로 끌어내는 촉매다.

(3)인물이 배경과 만나서 비로소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은, 사실을 확인하고 처리하면 그만인 사고와는 
달리, 사실 이면에 진실이 있으니 거기에 도달하라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일단 진실이 드러나면 
이제는 그 진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인물은 그 진실에 응답할 것은 요청받게 된다. 
이 순간이 이야기의 절정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그러나 불가능한 것이 아닌, 그런 응답. ‘아, 인간이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이 응답을 통해 인간에 대한 고정 관념이 흔들리고 선과 악에 대한 
우리의 판단체계가 흔들린다. 사건, 진실, 그리고 응답이라는 도식.

좋은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인식’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판단이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인식이 없는 판단은 나쁘다. 아니, 최소한 그것은 문학이 아니다.) 독자는 도덕적 판단을 중지하고 그 인식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다. 판단을 앞세우면 새로운 인식이 생산되지 않는다. 완강한 태도로 
작품을 읽고 도덕적인 판단을 내린 다음 던져버리는 독서가 있을 것이고, 끝까지 읽고 나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고 기존의 선입견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독서가 있을 것이다. 
앞의 독서는 나를 더 나 자신이 되게 만들고, 뒤의 독서는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든다.

문학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을 생산하기 위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있다. 문학은 무엇을 위해 읽는가. 그 인식을 통해 내가 달라지기 위해, 
타인에 대해 성급하고 폭력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기 위해, 타인에 의한 성급하고 폭력적인 판단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 읽는다.




마음에 남는 말 : 

• “‘작가의 ‘글을 쓸 때 이 책을 쓴 의도나 ‘이런 얘길 하고 싶었다’라고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 Response+ability=responsibility 응답이 책임을 지는 것


• 악당이 악행만 하는 기능적인 이야기가 가장 안 좋다.


• 성급하고 신속하고 폭력적인 ‘단언’들이 가장 위험하다.


• 그 문학작품을 읽고 나서 내 삶이 1도라도 달라져야 보람이 있다.


• 섬세해야 비판할 수 있다. 쉽게 비판적인 사람일수록 섬세하지 않다.


• 잘하는 일을 해라. 내가 인정받는 분야의 직업이 가장 좋은 직업이다.


• 근래에 본 유일한 드라마는 ‘밀회’다.



참고문헌 :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 2011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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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특강 11탄 - 임경선의 관계론 : 트위터에서 깨닫는 관계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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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단절된 개인, 붕괴된 사회, 악몽의 국가
초대손님 : 엄기호 선생님 / 덕성여대 문화인류학 강사
일시 : 2014년 6/1(일) 오후6시-8시 
장소 : 홍대 상상마당 아카데미 대강의실 (협찬)
인원 : 65명


내용요약 :

‘개인’이 된다는 것, 즉 자아의식과 정체성을 가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뭘 원하는지 모르고 죽는다. 인간은 본래 자기가 자기를 알기 힘든 존재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비추는 내가 아닌 존재인 ‘타자’가 필요하다. 나와 상관없는 ‘남’이라는 타자가 아닌 외면할 수 없는 ‘너’라는 타자말이다. 인간은 ‘너’를 통해 비로서 ‘나’일 수가 있고 세상의 교육이란 ‘남’을 ‘너’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요, 
인생은 생각해보지 않았던 ‘남’을 ‘너’로 끌어오는 과정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에겐 ‘개인’도 없고 ‘사회’도 없다. 대신 ‘우리가 남이가’식의, 동일성에 의해 묶여진 부패한 ‘우리’만 남았다. ‘사이’가 없으니 ‘소통’이 필요없어 그것은 ‘관계’가 아니다. 차이가 없으니 사이가 
없고 사이가 없으니 너와 내가 없다. 우리에겐 서로의 말을 존중하고 끝까지 듣는 ‘평등’한 관계와 이해관계에 예속되지 않은 ‘자유’를 기반으로 한 ‘서늘한’ 우정, 즉 ‘곁’이 필요하다. 서로 경청하는 ‘곁’을 만들어나갈 때 궁극적 목표인 ‘좋은 삶’을 도모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말 : 

• 평등의 기초는 두 사람의 말이 다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 부모님 세대와 얘기할 땐 절대 논리를 가지고 싸우면 안된다.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들의 
경험을 궁금해하고 들어주며 역사속 주체로 인정하고 사회적 존재감을 주어야 한다.


• ‘곁’의 역할을 이젠 ‘시장’에서 돈으로 해결한다(멘토, 정신과의사, 사담사, 종교인, 철학자 등).

• 세월호 유가족들이 주장하는 것은 ‘말이 가치가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


• 신자유주의는 나르시시즘적으로 나를 착취하고 자기를 소진시키는 구조이다.




질의응답 내용 : 

1.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의 안전에 대한 감각은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안전은 국가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줘야 하는 것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안전은 안보, 즉 국가의 안전이다. 국가의 틀이 깨지면 우리가 죽고, 그래서 우리가 국가를 지켜야 하고 정작 우리 자신의 안전에 대해선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걸로 치부한다.

2. 지난 어버이날에 세월호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행진은 국가와 개인이 쿠션 없이 맞붙은 큰 사건이었다. 개인이 국가와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게 하는 것이 존엄인데 그 날 존엄은 완전히 훼손되었다. 이런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법, 언론, 노조, 협회, 교회, 등의 결사체가 존재한다. 또한 정치의 역할이 개인들을 보호하는 것일 때, 과연 지금 정치인 중에 누가 유가족을 보호하고 쿠션이 되어주는가?

3. 투표 이후에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를 활성화' 하는 것이다. 지금은 사회가 없고 '낱개' 들과 국가밖에 없다. 국가가 사회를 억압하고 있다. 모임은 집회이고,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을 규합하는 것이 결사다. 규합한 것을 소리내는 것이 
표현이다. 집회, 결사, 표현이 없으면 사회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데모가 일어나는 사회가 활성화된 사회이다. 내가 소속된 결사가 있어야 한다.

4. 평등과 동등은 다르다. 단순하게 반말 까는 게 평등은 아니다. 이런 수준낮은 평등을 나는
'야자타임 평등' 이라고 부른다. 평등의 핵심은 '법 앞의 평등' 이고, 그 법은 모두에게 같은 법이어야 한다. 평등이 안 되는 건 비정규직 때문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다른 법이 적용되니까.

5. 평등을 강조하는 이들이 나중에 더 꼰대가 되는 것은 그들에게 '지혜' 가 없기 때문이다. 후배나 
자식이 들을만한 이야기가 있고 그 경험을 제때 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치가 하고 듣는 사람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좋은 사회는 애들이 아닌 나이든 사람에게 압력을 가하는 사회다. 그런데 이 사회는 애들에게만 압력을 가하므로 좋은 사회가 아니다. 이 사회엔 어른은 없고
'애새끼' 와 '꼰대' 만 남았다. 

6. 사회 문제에 관심 없는 친구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나는 안다', 너희는 모른다'식의 계몽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태도는 재수없어서 사람들이 도망가버린다. '말 걸기' 가 필요하다. 
그들의 경험을 끄집어내서 생각하게 말을 걸어줘야 한다.

7. 사회가 뭔가를 약속할 때만 우리는 뭔가를 기대할 수 있다. 약속이 없거나 약속이 이행되지 않은 
사회에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다면 '사과'를 해야만 신뢰가 지속될 수 있다. 
우리는 ‘말이 제 값을 하는 사회’를 원한다.



참고문헌 : 

• <단속사회>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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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특강 11탄 - 임경선의 관계론 : 트위터에서 깨닫는 관계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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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욕망의 구조조정 
초대손님 : 박해천 교수님 (‘아파트게임’ ‘콘크리트 유토피아’ 저자)
일시 : 2014년 3월30일(일) 오후6시-8시 
장소 : 홍대 상상마당 4층 아카데미 대강의실 (장소후원)
인원 : 69명


내용요약 :

60년대 이전에는 중산층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일부 상류층과 대다수의 서민의 구도였고 [여원] 등의 ‘고상한’ 상류잡지를 통해 실제 서민생활과는 다른 왜곡된 욕망을 부추키는 이미지나 범람했다. 그러다가 정부가 4인 가족시스템을 장려하고 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생겨나며 박해천교수는 신림동 어린시절 양옥집에 살다가 하나둘 강남 아파트로 이사간 친구들과의 재회에서 라이프스타일이나 취향의 이질감을 느끼며 ‘집이 사람을 바꾼다’는 것을 느낀다. 
실제 소득이 부족함에도 불구 사람들은 80년대에 접어들수록 아파트와 마이카로 인해 자신을 중산층이라 믿었다. 더불어 백화점, 교회, 사교육 등의 중산층 주변문화가 기여한 바가 컸다. 90년대 생긴 5개 신도시가 배출한 120만명의 ‘중산층’이 새로이 만들어지면서 이들은 ‘이마트’를 중심으로 ‘신중산충’을 구성해나갔다. 


한 편, 7,80년대에 분양받은 아파트는 10배~15배가 상승함으로서 아파트 시세차익이라는 자본소득이 부모세대의 소득수단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푸르지오 아파트광고 등의 ‘당신의 이름이 되는 아파트’처럼 아파트는 한국인에게 하나의 자기증명방법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의 중산층은 없다. 우리가 머리 속에서 상상하는 ‘중산층=연봉 7,8천’은 실제가 아니다. 겨우 상위 10%만이 실질소득 연봉7천만원을 벌고 있는 것이 현 실태이고 아파트 가격이 고정되어 있는 지금, 특히 지금의 20대들에겐 욕망의 구조조정을 자체적으로 하지 않으면 미래가 힘들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질의응답 내용 : 

• 정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싶다면 각자 제 자리에서 스스로 해야 한다. 스스로 하지 않으면 반드시 약장사와 힐링팔이가 몰려든다.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어떻게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할 것인지, 더 나아서는 어떤 사람을 구청장으로 선택하고, 국회의원을 뽑을 것인지 직접 고민을 해야 한다. 


• 현재의 20대들이 정부에 대해 짱돌을 던지지 않은 이유는 그 세대가 부모 의 자장 안에 놓인 채로, 스스로 무엇을 극복해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면 8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중산층의 자녀 상당수 경우, 성장기에 중요한 의사 결정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부모가 대신 해주는 경험을 했다. 자율성을 갖춘 주체로서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 개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 시킬 방법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같은 취향을 커뮤니티가 될 수도 있고, 하물며 트위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커뮤니티들에 활동을 한다는것은 여러분들이 어디 의식적으로 고급 레스토랑에 나가서 뭔가를 먹는 것 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 들면서도 개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가령 트위터로 보면서 임경선씨가 가장 재밌는 방법으로 작업용 테이블을 구매하는구나 생각했다. 테이블이 170만원이었다면 비교검색도 해보고 직접 발품 팔아다니는 그 과정에서 가구에 대한 이해도 생기고 목수라던지 가구 디자이너들도 만나는 그런 특별한 경험을 거쳤기에 170만원으로서 할 수 있는 굉장히 효과적인 소비를 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물건’이 아닌 ‘재미’ ‘경험’‘지식’을 얻은 셈이니까. 

• 한국 사회의 중산층은 아파트를 경제적 토대이자 주거의 형태로 삼음으로서 굉장히 얄팍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아파트 커뮤니티 밖에 없다면, 그건 ‘셀프-고자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대형 아파트에 있는 헬스장이나 카페 같은 커뮤니티 시설을 보면 ‘아니 인생이 얼마나 불행하면 만날 사람이 없어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과 차를 마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우리는 자신이 ‘사회구성원’의 일부라는 사실을 직접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냥 나는 소비자고 고객인것. 돈을 지불해야만 인간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내가 돈을 지불하니까 네가 나를 인간 대우해달라는 건데 얼마만큼 자기가 인간대우를 못 받았으면 돈을 쓰고서야 인간 대우를 받아야겠다고 달려드는건가 싶기도 하다.


• ‘욕망의 구조조정’이라고 했을 때 나는 정말 내것을 안다는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내가 내 직감이나 내 확신이 있는 것 외에는 하나도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내 자신을 안다는 것 부터가 욕망의 구조조정의 시작이다. (임경선)


• ‘메타 자아’라고 부르는 게 있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나 뻘줌한 상황에 놓일 때, 될 수 있으면 내 시선을 공중에 띄워서 나 자신을 3인칭의 시점으로 보려고 한다. ‘야 넌 지금 상황이 참 웃기게 되었구나’ 그게 제가 그 상황을 즐기게 되는 한 방법이다. 내가 나를 돌아보는 성찰적인 시선이 있으면 남들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을 수 있다. 나를 판단하는 건 나지, 남이 아니다. 내 자신을 들여다 보려는 의지나 훈련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개인이 설정한 목표가 뭔지 분명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이걸로 돈을 벌자는 것인지, 취미로 하자는 것인지…


• 취미와 직업을 정확히 분리하고 꿈하고 목표도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꿈하고 목표는 정-말 정말 다른거니까. 나는 꿈에 관심 하나도 없고 애들이 자기 개인 블로그에다가 꿈이야기를 늘어놓는 시간에 좀 더 구체적인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길 바란다.(임경선).


•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만나며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주변을 다져가면서, 자신이나 주변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기 이해관계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른 사람과 마찰을 빚었을 때 협의나 토론이 가능해진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개인들이 될 수 있으면 자기 이해 관계를 감추려고 한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자신의 이해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다.

이 날의 어록: 

• 저축을 열심히 하세요. 소비 중 30%는 줄이세요.

• 월세는 절대 안되요. 월세는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려워요. 될 수 있으면 전세로, 쉐어하우스를 하더라도 방이 아니라 집의 꼴을 갖춘 곳에서 사세요. 공간 자체가 삶의 질을 변화시킵니다.

• 우리는 스스로를 ‘시민’이라기보다 ‘고객’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요.

• 자신의 문제를 남이 해결해주리라고 기대하지 말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되요.


참고문헌 : 

• <아파트게임> 휴머니스트 2013

• <콘크리트 유토피아> 자음과 모음 2011

• <조선일보> 인생 10계단 특집기사 

1. 배우고 2. 취업하고 3. 자식 키우고 4. 내집 마련
5. 퇴직 6. 창업 했다가 7. 자식 결혼 
8. 노부모 부양 9. 노년에 아프다가 
10. 장수에 이르기까지 세대별(88만원, 베이비부머, 일제강점기 세대등)로 드는 총 비용에 따르면 
국민 평균 소득으로 인생 10계단에 드는 비용 충당하는 것은 무리. 

인생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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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특강 11탄 - 임경선의 관계론 : 트위터에서 깨닫는 관계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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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임경선의 관계론 : 트위터에서 깨닫는 관계의 핵심
초대손님 : 김두식 교수님 ('욕망해도 괜찮아''다른 길이 있다' 저자)
일시 : 2013년 12월15일(일) 오후6시-8시 
장소 : 홍대 상상마당 4층 아카데미 대강의실 (장소후원)
인원 : 71명


내용요약 :

몇 해 전부턴가 내가 더 이상 사람들한테 스트레스를 별로 안 받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스스로도 놀랐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스트레스를 줄 법한 인간관계를 분류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시행착오를 통해 단단해졌기 때문임을 알았다. 가령 첫째, 가족 등 좋으나 싫으나 내가 평생 안고 갈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면돌파하여 포기할 건 포기하여 에너지낭비나 애먼 기대나 요구를 안 하고, 둘째, 나에 대해 선입견이나 적대감을 가진 사람들은 그저 피하고, 마지막으로 셋째, 그 외의 서로 거치는 관계는 자연스런 생로병사를 겪도록 놔두었다. 이 '분리수거' 과정은 본능적이고 직감적으로 이행하고 지지부진 끌지 않는다. 자꾸 분석이나 의미부여를 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자체가 사실상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다짐의 핵심은 '무리하지 않기'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무리하는 이유는 첫째, 나의 자존감 부족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즉 인정욕구로 채우려고 하고 (관계는 가변적이라 위험하다. 자존감은 그저 일상의 자발적인 성실함에서 나옴)둘째, 내게 어울리지도 내가 좋아하지도 않은 환경에 나를 가둬놓고 관계를 끊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부담이 있고, 셋째, 
벗어날 수 없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특정 인간관계들 (회사사람들, 결혼생활, 부모자식관계)에 대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이다. 워해야 하는데 미워하지 못하거나, 미워할 필요가 없는데 미워하거나. 즉 '감정'을 써야할 때와 '머리'를 써야할 때를 혼동한다. 즉 '어쩔 수 없는 것들'로 스스로를 소모시킨 후, 그 고통을 내면화시켜 상처를 자신의 무기로 사용한다. 

트위터에 빗대어 관계를 얘기하는 이유는 트위터에는 실제 인간관계와 매우 유사한 리얼리티가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엔 '좋아요' 밖엔 없지만 트위터엔 좋고 싫다,의 표현을 꽤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이기 때문에 오프라인만큼의 충격/상실감 덜하다. 트위터 인간관계는 그래서 '무리하지 않은 관계'를 훈련해볼 수 있는 좋은 장이라고 생각한다. 트윗 키워드로 평소 가졌던 생각을 하나하나 살펴보겠다. 


1. 언팔 (싫다는 감정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관계에서 무리하지 않음이 의미하는 바는 한 마디로 '싫으면 싫다고 인정하는 것.'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참 착해서 싫어도 상대를 언팔하지 못한다. 혹은 어떤 사람들은 '그냥 싫다'면서 상대를 어떻게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자, 이럴 땐 둘 다 어떻게 한다? 조용히 언팔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싫어할 때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다. 

1) 이유를 알려고 노력할 것 : 왜 나는 그를 싫어하는가

깔끔하게 싫어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다. 바로 무관심으로 가니까. 그런데 '복잡하게' 싫은 마음이 골치아픈 것이다. 싫으면 싫다고 인정하는 건 좋은데 내가 욕하고 미워할 때는 그 이유가 정말 공정한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미움에도 페어플레이가 있다. 특히 나한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지 않는 한, '그냥 싫다'는 사실 그냥 싫은 게 아니라 '복잡하게' 싫은 것이다. 거기엔 매우 복잡한 내 마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걍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미워함을 공개적으로 어설프게 드러내는 것은 인간으로서 좀 질이 낮은 것 같고 우리가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어른'이라면 이걸 풀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복잡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것은 대개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 당사자의 insecurity문제이기 때문에.

? '내가 (그냥) 싫어하는 사람''비호감인 사람'은 참 나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1) 나와 달라서 싫은 사람(캐릭터 다른 사람) : 나를 후지게 보이게 만드는 사람. 내가 나에 대해 마음에 안 드는 점을 부각시켜주는 사람. 날 바보로 만드는 사람. 아직 내가 스스로에 대해 단단하지 않고 취약한 부분이 어디인지 보여준다. 상처, 컴플렉스 부위를 알려준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짓들은 보기만 해도 '아프다'.가령 나를 경박하게 보이게끔 하는 진지한 사람. 나를 지루하게 보이게끔 하는 세련되게 가벼운 사람. 

2) 나와 비슷해서 싫어한 것(캐릭터 겹치는 사람) : 동종혐오. 즉 내 안에 미운 점을 직시못하고 상대방이 그걸 가진 걸 보고 어쩔 줄 몰라하는 것. 즉 내가 회피하고 도망다니고 있던 것들을 알려줘서 보고 있으면 짜증나고 불편하다. 

3) 나의 충족되지 못한 욕망 투사 :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억하심정. 하지만 그 결핍이슈가 해결되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풀어질 수 있다.

? 한 편, 사실은 '그냥' 싫어하는 것도 없다. 트위터에서도 사람들은 모르는 그들 사이에 어떤 미묘한 작용이 오갔다. 탐라인에서 말 섞다가 어느 순간 안 섞게 되거나한 쪽에서 말 안 하고 먼저 언팔했거나 (아니, 그럼 말하고 언팔할 수도 없잖아..)오프에서 아는 척 인사했는데 한 쪽이 그닥 친해지려는 모습을 안 보이거나. 즉 내가 원하는 만큼의 관심을 내가 돌려받지 못했을 때의 박탈감, 무시받고 있다는 속상함 : 내가 상대보다 덜 관심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은 참 속상함) 이 때, 사람 마음은 자신의 자존심을 보듬기 위해 '저 사람은 이래서 별로다'라는 객관적 근거를 찾으려고 분석하고 애쓴다. 

2) 꼬인 인간이 되지 말 것 

? 싫어하는데 팔로하면서 욕하는 사람, 싫다는 사람의 근황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언제 쟤가 실수하고 망할까 기다리는 사람, 너무 이상하다. 그러면서 내 주변 사람들도 그 사람을 싫어하도록 조정하는 것에 힘쓰는 사람, 그런데 또 막상 내가 먼저 상대 싫다고 해놓고서 상대도 나 싫어함을 알았을 때 완전 쇼크 받는 사람, 너무 이상하다. 

개인적으론 가장 별로인 것은 주어 없이 '디스'하는 것. 누구를 암시하듯 일반멘션으로 욕하고 그 주변인물들이 알티로 열심히 퍼날라서 반드시당사자가 볼 수 있도록 하기 (퍼나르는 사람도 졸렬. 자기가 직접 뭐라고 하진 못하고 간접적으로 디스) 정말 상대가 나한테 뭘 잘못했다거나 그러면 직접 부딪히면 되는데 또 그것까진 애매하니까 못하고, 그렇다고 혼자 속으로 감정을 삭히자니 잘 안 되고, 그래서 애매하게 자신의 미움을 표출하는 것. 하지만 이렇게 애매한 것들이 중간지대에서 맴도는 이유는 이런 미움들은 대개 나 자신의 문제에서 비롯된 게 많기 때문에. 그리고 직감적으로 '내' 문제인 걸 본인도 아니까 상대한테까지 직접 못 들고 간 것들이다. (재밌는 건 누가 주어없이 욕하면 여기서 꼭 엉뚱한 사람들이 자기 얘기라고 착각) 

? 우리는 이토록 유치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랬던 적이 있었고 나도 반대로 겪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지킬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것은 내가 '나의 이슈'를 스스로 풀어낸 다음, 우연한 기회에 그 상대와 사이좋아질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 열어두고 그때만큼은 내가 먼저 손을 뻗을 용기를 가지는 것. 

한 편, 내가 미움을 받는 입장일 때는?
미워하는 사람의 자존감 부족만이 원인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일단 누가 나를 미워할 땐 거기엔 나에 대한 일말의 진실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 그래서 '아 나의 이런 모습이 이런 식으로 보일 수도 있구나'는 분명 참고하고 넘어간다. 가령 제 경우엔 나른한 중산층 허위의식 트윗이네, 일견 도발적으로 보이지만 위협적이기는 포기하는 안온한 회색분자형 개혁의식이네, 늙어서도 어린 여자인 척 한다, 뭐 주로 이런 공격을 받는데 어쨌든 그것들을 다 '관심'이라 생각하고 '참고'하되 거기에 가급적 '상처'는 받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여기서 자의식과잉으로 페이스에 말려들어가면

자기 내면 문제를 핸들링 못해 타인에 대한 공격성으로 표출하는 상대 +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까 전전긍긍하는 자의식 과다인 나= 최악의 콤비. 펑!



2. 멘션

Tolerance의 문제 : 인간에 대한 내 통제욕구를 포기하라 / 제멋대로 말할 자유를 허하라)
이질감 vs. 이해심


트친이 멘션 써놓은 것 보고 '뭐냐' 싶은 감정이 든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이 사람 맞나? 사람은 내가 보는 게 다가 아니다. 시사문제에 의견표명하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불편함, 혹은 허세나 욕망이 보이는 트윗에 대한 불편함(가령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멘션이랑 사진 붙엿는데 커피잔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 옆에 아무렇게나 있는 샤넬가방이 진짜 주인공이라거나). 막 뭔가를 보여주거나 증명하고 싶은 그 마음…좀 이해해주면 안되겠니? 욕망과 결핍이 고스란히 보이는 것도 때로는 참 연민의 마음이랄까, 사랑스럽다. 엄격한 자기검열보다 차라리 낫다. 내가 누군가를 내 입맛대로 취향대로 바꿀 수는 없다. 

팔로를 했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한 가지 요소라도 내가 '참 좋다' 싶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 모든 '팔로'에는 '이해'라는 감정이 깔려있다. 마음에 다 안 들어도 저 사람은 왜 저러는지 어느덧 '이해'하게 되는 일의 소중함.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는 데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이해는 분석과는 다르다. 나의 불완전함이나 불가해함만큼 상대의 불완전함과 불가해함을 이해한다는 얘기다. 

3. 트친

거리감각의 문제 :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을 아는 트친이라는 관계. 거리조절이 잘 안 된다.온라인관계라는 것은 실제 보기보다 더 친해보이고 실제보다 더 안 친하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보여주는 호감을 '이해'라고 착각해서 안 된다. 호감은 오히려 처음엔 이기적인 '호기심'에 가깝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해주는 것을 처음부터 기대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면 쉽게 상처입을 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나도 무리해서 상대에게 더 친절/착하게 멘션 달려고 애쓰지말자. 중간에 대화가 뚝 끊겨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가 좋다. 나는 꼭 좋은 관계라는 게 직접적인 '작용'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댓글 달거나 RT하거나 인사하거나 등. 걍 상대가 있는 것만으로 즐겁다라고 생각하는 것, 상대가 나에게무엇을 해주었냐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사실 무엇을 해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부담스럽다. 존재 자체가 주는 기쁨,이 가장 중요하다. 

케미스트리의 문제 : 내가 좋아하는 애가 내가 싫어하는 애랑 친하네? 그건 '그들의' 관계다. 사람마다 마음의 성감대가 다름. 어라? 나 지난 번에 얘랑 쟤에 대해서 뒷담화 깠는데 둘이 친한 척 말하고 있네. 이런 것도 냅둬라. 나도 분명 내가 한 때 뒷담화했던 사람과 지금 시시덕거리고 있을 것이다. 관계는 '마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시시각각 바뀌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또한 관계는 '마음의 영역'이기 때문에 '화학작용'이 있다. 
좋은 인간 + 좋은 인간= 좋은 우정, 이 아니다. 
좋은 남자 + 좋은 여자 = 좋은 연애, 이 아니다. 
내 안의 악마를 끌어내는 사람, 내 안의 성모마리아를 끌어내는 사람, 다 화학작용이다. 


결론 : 

전 나이들수록 여러가지가 깃털처럼 가벼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어도 삶의 무게,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 인간관계도 나이 들수록 아무래도 맨 먼저 할 일은 '나는 누구로부터 사랑 받고 싶은가,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를 가려내는 일 같다. 이게 굉장히 '편협'한 것 같지만 '내가 있어야 할 장소''내가 가지고 가야 할 관계'를 이기적으로 우선적으로 챙겨서 1차 보호막을 단단하게 하는 것이 그 외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도리어 내가 관대해지고 사랑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그리고 흘려보낼 줄 아는 용기. 애매한 체로 보낸다는 것, 그거 나름 용기다. 살면서 우린 여러 인간관계의 상처를 겪는다. 중간에 관계가 뚝 끊기고 내가 버림받기도 하고 내가 버리기도 한다. 어쩔 수 없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 관계가 조금이라도 '무리요소'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게 내 탓일까 네 탓일까 번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무리'가 존재했다면 자연스럽게 그 관계를 놓아주고 흘러가게 놔다. 예전에는 자꾸 분석을 하고 시시비비 가리거나 억지로 붙잡아두려했는데 그건 변명거리/자기합리화나 내가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나의 무죄를 입증하고 싶은 것이다. 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사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같다. 친했던 사람과 어느 때부터 안 친해지는 일이 있다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자연스레 이해되고 용서되는 것들이 있다. 이것을 인간관계론을 트위터환경에 빗대면 한 마디로 어쨌든 난 자유로운 팔언팔, 즉 관계의 자연스러운 생로병사를 믿는다.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간다. 갔다가 다시 오기도 한다. 분명히 흘려보내도 돌아올 관계는 돌아온다. 대신 한 번 미워하거나 오해했다가 다시 좋아하게 되면 사랑의 파이가 커지는 기쁨도 누린다. 관계의 '상실'을 인정할 용기가 있다면 어느덧 관계는 '재생'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 사람들의 관계는 늘 그렇게 살아있고 그래서 늘 흥미롭다.



기타 몇 가지 포인트 : 

? 날 사실은 껄끄러워하는데 자기 포용력 넓음을 보여주려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 너 커버할 수 있어'같은. 그래놓고 나중에 '난 기회를 줬는데…거봐 넌 그럴 줄 알았어.'라며 역시나 실망하고 돌아서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피하는 게 좋다. 

? "인간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들도 많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노력이 고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나와의 관계 망가뜨리면결과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도 망가지게 한다.

? 난 모두를 좋아할 수도, 내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도 없다.

? 여자분들의 경우 회사생활 하면서 사람들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으로 분류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그냥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 정도로 분류해서 대처하는 게 적당하다. 

? '내가 여태 이런 상태인 것은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못받아서다'처럼 피해의식 과다. 물론 맞는 말이겠지만 서른 넘어서까지 부모 탓을 하는 것은 그냥 그 껍떼기안에서 남탓하고 있겠다라는 게으름. Let go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 

? 꼭 하필 심적으로 불편한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사용자'로 트위터가 추천한다.


참고문헌 :


<나라는 여자> 마음산책 2013
<욕망해도 괜찮아> 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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